더바, 두보초당에서 고딩 시절을 돌아보다
오늘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입니다. 성도 여기저기 큰 건물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간혹 있었습니다만 불교를 주로 믿는 사람들이라 거창한 장식은 아니었습니다.
오전 첫 순서로 두보초당을 갔습니다. 초당이란 말은 ‘풀과 볏짚으로 지붕을 엮은 초가집’이란 뜻인데,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茶山草堂)’과 같이 옛 선비가 검소하게 살던 띠집이란 뜻입니다. 벽돌집 통나무집 한옥 양옥 등은 대단히 거창한 집인데, 그에 비하여 학생으로 말하면 거의 초딩에 가까운 집이기에 점 하나 더 찍어 초당이라 하는 것 같습니다.
이 분재 사진은 여기 것이 아닌 듯합니다. 무후사인지 도교사원인지 모르겠습니다. 개구리가 앞에 있는 메뚜기를 잡아먹으려 하는 형상으로 돌멩이를 배치하고 그 돌 위에다 조그만 나무를 심어 길러 놓았습니다.
저는 분재 대체로 싫어 합니다. 나무를 골병들게 하여 기르는 일 아닙니까? 그러나 하도 이뻐서 찍었습니다.
이 사진처럼 중국인들도 많이 찾아오더라구요.
이런 곳은 문학도인 저에게는 가슴이 설레는 곳이죠. 고등학교 교과서에 요즘도 나오는 두시언해(杜詩諺解)를 배운 기억이 생생합니다. 고딩 때 고전문학 가르치시는 선생님은 노인이셨습니다. 당시는 교사 정년이 65세였으니 아마 거의 정년 직전이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나 그 낭랑한 목소리로 두보의 시를 선창하시고 우리는 따라 읽었는데, 무려 세번이나 반복하시는 거였습니다.
저는 두보의 시들이 하도 좋아 節句 江村 春望 강남봉이구년 貧交行 등을 욀 정도로 쓰고 또 쓰고 하였습니다. 어릴 때 제가 살던 마을과 흡사한 광경이 많아 그것도 참 희안하였습니다. 지면을 빌어 빈교행 베껴 온 것을 하나 소개합니다. 이 시는 특이하게도 글자 하나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두보가 쓴 것이므로 상관없다고 생각한답니다. 청자연적의 꽃잎 하나가 꼬부라진 파격이 멋이라고 피천득 선생이 '수필'이란 수필에서 말씀하셨지요?
"덕수궁 박물관에 청자 연적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본 그 연적은 연꽃 모양을 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 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破格)이 수필인가 한다."
기억 나시나요?
貧交行 빈교행 ----------杜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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翻手作雲覆手雨 번수작운복수우
紛紛輕薄何須數 분분경박하수수
君不見管鮑貧時交 군불견관포빈시교 (3행이 8자입니다)
此道今人棄如土 차도금인기여토
손바닥 뒤집어 구름 만들고 손바닥 엎어 비를 만드는 것 같은 저 꼴들 좀 보소.
어지럽고 가볍고 얇은 인심으로 칠갑을 했으니 이걸 어찌 했으면 좋겠으까?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관중과 포숙아가 가난할 때 사귀던 그 두터운 우정을!
이러한 도를 요즘 인간들은 흙처럼 값없이 내다 버리네.
(내용만 보면 요즘 세태를 훈계하는 것 같아 마치 21세기에 쓴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를 돌아보는 도중 초당 벽에 두보가 지은 ‘춘망(春望)’이라는 시가 씌어져 있었습니다. 교수님들께서는 이 시를 저에게 풀이해 주기를 희망하셨습니다. 떠벌리기 좋아하는 체질임을 한눈에 알아보신 것이지요. 어설픈 풀이였지만 박수 받았습니다. 참으로 T. S. Eliot의 황무지 서두와 꼭 같습니다.
<춘망(春望)>
國破山河在(국파산하재)~4월은 잔인한 달, 망한 땅이지만 이누무 땅에서도,
城春草木深(성춘초목심)~사람들 슬픔 아랑곳 않고 초목은 여전히 무성쿠나.
感時花濺淚(감시화천루)~피난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꽃을 봐도 눈물만 흐르고,
恨別鳥驚心(한별조경심)~처자식과 이별한 한이 맺혀 끼룩끼룩 새 소리에도 놀라는구나.
烽火連三月(봉화연삼월)~난리 소식 석 달이나 이어 오니 이 고통 언제 끝나리오,
家書抵萬金(가서저만금)~피난지에서 개기다리는 건 오지도 않는 마눌의 편지로다.
白頭搔更短(백두소경단)~4년 피난생활에 하얗게 센 머리카락 엉성해지고 짧아지니,
渾欲不勝簪(혼욕불승잠)~상투를 묶으려 해도 비녀를 못 버텨 봉두난발(蓬頭亂髮) 절로 되네.
아마 이때 난리가 안록산의 반란이었지 싶습니다. 당 현종 몰래 경국지색 양귀비와 밀통을 하던 안록산이 황제의 눈을 피해 이런 미인을 가끔 만나다 보니 성에 차지 않아 양귀비를 빼앗으려 반란을 일으켰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현종은 피난 가면서 양귀비를 데리고 가버리죠. 대신들은 양귀비를 죽여야 한다고 아우성을 쳐서 현종이 할 수 없이 승낙하였는데, 대신 몸에 상처를 내지 말고 죽여라 했기에, 비단 필로 목매달아 죽였다 합니다. 미인박명이죠.
당나라는 처음부터 좀 야시끼리한 구석이 있습니다.
당 태종의 후궁이던 무미랑은 태종이 죽자 그의 아들 당 고종의 후궁이 되었다가 나중에 황후가 되고,
자신의 아들을 다 죽였는지 저절로 죽었는지 모르지만 황제에 즉위하여 15년이나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양귀비도 당 현종의 아들(이청이었으나 개명하여 이모, 30명 중 18째 왕자였다고 합니다.)의 후궁이었는데, 아비란 자가 자식의 후궁을 빼앗아 자신의 후궁을 삼았습니다. 그 대가로 성을 몇 개 더 주었다 하던가???
그러고는 경국지색이니 뭐니 하면서 죽이죠. 역사의 남자들은 자기가 잘못하면 여자를 죽이더라구요.
중국 사람들은 나라가 서고 망하고 하는 어떤 시스템을 믿나 봅니다.
모든 나라의 창업과 멸망을 거의 비슷하게 이야기하고 있죠. 성군이 세우고 여자에게 빠져 망한다고.....
하나라 창업은 성군 요임금이었으나 왕조 말엽 걸왕이 말희와 주지육림으로 놀아나다 망하고,
은나라 탕왕은 걸을 내쫓고 나라를 세웠으나 국호가 바뀌어 상나라가 된 후 말엽에 주왕과 달기가 포락지형으로 말아먹고,
주(周)나라 무왕은 주(紂)왕을 몰아내고 나라를 세웠으나 끝판왕 유왕과 포사가 늑대소년 놀이하다 망했다고....
조선의 성군 세종대왕께서는 한글을 창제하시고 한글이 얼마나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지 여러 가지 사용법을 보여 주셨는데, 그 중 중국의 시를 번역하는 작업도 명하셨습니다. 학식만 있고 번역만 잘하면 신분의 고하를 가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조선은 성리학을 나라 다스리는 이념으로 삼았기에 실사구시(實事求是)를 표방하다 보니, 낭만적인 이백의 시보다 현실적인 두보의 시가 백성 교화를 위하여 더 좋다고 판단하여 번역을 명(세종 25년, 1443년 4월)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주 방대한 작업이다 보니 38년 뒤인 성종 때(1481년, 성종 12년)에 가서야 완성되었고, 이를 처음 번역한 책이라 하여 ‘초간본’이라 부릅니다. 이 책의 서문을 저의 조상 매계 조위 선생이 썼습니다. 지기님의 고향인 김천시 봉산면 봉계리는 지기님 성씨 200호, 더바의 고향이고 더바의 성씨 200호가 사는 아주 큰 동네입니다.여기 사는 조가들이 매계의 후손들입니다. 앗! 이말까지 하면 틀림없이 욕먹을 텐데.....용서하이소.
세월이 흘러 임진왜란(1592~1599)도 겪은 뒤 150여 년 후에는 말이 많이 바뀌어 사람들이 초간본을 읽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라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쌔....." 처럼 훈민정음 서문을 읽어보면 그 느낌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리하여 인조 때(1632년, 인조 10년 3월) 초간본을 바탕으로 하여 다시 당시의 말(17세기 우리말;이것으로 말이 변천한다는 게 증명이 되는 셈이죠.)로 번역한 것이 아래에 보이는 큰 글씨입니다. 이를 ‘중간본’이라 합니다. 위의 시를 학자들이 번역한 것이지요. 더바가 번역한 것보다는 훨 더 깊이 있습니다. 직역이라 더 그윽하고 고상하고 품위 있잖습니까?
이 그림은 초간본과 중간본의 글자 차이를 보여주기 위한 자료입니다. 낱말에 세모 글자가 있고 없음을 알아보실 수 있겠지요?
상당히 넓은 초당을 돌아보면서 규모가 엄청나서 놀랐습니다. 우리 정약용 선생의 다산초당은 여기에 비하면 너무 초라합니다. 그래서 진정 초당이지요. 아마 두보 초당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관광객들이 많이 오자 쓰촨 성부에서 이리 가꾸어 놓았을 것입니다.
내 이럴 줄 알았네요. 쓰다보니 고등학교 국어시간처럼 되야뿌러 죄송합니다.
여행기를 끝내려 했으나 왜요님이 '불허한다!' 하시므로 겨우 몇 줄 끄적거려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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