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바, 쓰촨 여행에서 상산육호를 만나다
상산사호 : 호(皓)는 희다는 뜻으로, 중국 진시황(秦始皇) 때 난리를 피하여 산시 성(山西省) 상산(商山)에 들어가서 숨은 네 사람의 선비.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록리 선생(甪里先生)을 말하는데 모두 눈썹과 수염이 흰 노인이어서 이렇게 불렀다.
12월 22일 목요일 점심을 먹은 뒤 강남고속버스 터미널로 갔습니다.
아, 물론 문경에서 리무진 버스를 11,900원씩 내고 저희 내외가 탄 겁니다.
고속터미널은 저번처럼 붐비더군요. 배낭을 메고, 손가방도 들고 갔습니다. 마눌은 캐리어가 성해 발걸음도 가벼웠지만, 전 캐리어 발통이 고장 난 걸 고치지 않고 미련 대다가 출발하는 바람에 등에 지고 손에 들고 하였으니, 백인이 유아이사(伯仁 由我而死)라 누굴 탓하겠습니?
게다가, 은근히 인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 타기를 바랐으나,
저는 갑이 아니란 걸 명심해야 합니다. 말도 꺼낼 필요 없습니다.
당연히 을에 해당되므로 갑을 따라 전철을 타게 되죠.
공항을 가니 더 붐볐습니다. 모두들 참 신나게 산다는 느낌이 찐했습니다.
나라가 이 지경인데, 어찌 해외로 이키나 쏟아져 나갈까효?
애국심도 없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저희 내외도 나가고 있군요. 제 눈의 들보는 안 보이는지라...^^)
그리고 매체들은 왜 그리 불경기라며 호들갑을 떠는지...
분명한 것은 모두들 돈을 아주 잘 번다는 사실이죠.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구요,
“빈대떡신사”라는 떡집인지 술집인지가 전국 92개소 개업 중,
서울에만도 27개소라고 因特网(internet)이 갈치 줍니다.
출발 두 시간도 더 전에 출국심사를 마치고 국세청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 입성.
Gucci나 雪花水 등의 판매대 앞에서 이제 정말 乙로서의 임무에 충실할 때.
곧(제게는 한참이었죠.) 기다림의 미학을 실천한 공로를 인정받아 Lotte로 갔습니다.
발렌타인 앞에 가서 서있어 보았으나 효과는 없었습니다.
Москва́ 살다가 Hochiminh(Sài Gòn) 으로 이사간 둘째 아들의 말
“Gienfiddich 18년이 가격 대비 맛은 완존 A급!” 을
우리 집 여왕께서는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시는 고로, 이걸 삽니다.
그러나 실망하기는 이릅니다. 판매사녀께서는 반드시 사족을 덧붙여 주시죠.
“싸모님! 성탄주간 특세일로요, 한 병 사면 10%, 두 병 사면 25% 깎아주거든요!”
예수님 혹은 아가씨 덕분에 저는 성수 두 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기쁨 두 배, 즐거운 성탄이죠.^^
그러나 예수께서 드신 술은 포도주이지 십팔년짜리이면서 알콜 함량 40도짜리 클렌피딕(글렌피디흐?) 아닌 걸 명심하고 죄송한 마음을 잠시 가져 봅니다. 등에 지고 한 손에 보스턴 백 들고 반대편 손에 술 700mm 두 병 든 비니루봉다리 들고 깨질세라 개조심하며 다니니 운동 제법 됩니다. 헬스에 가지 않고도 운동할 수 있으니 참 감사한 일이죠.
역시 성탄은 많은 선물을 따따블로 주시는 주간입니다.
쏼라쏼라 하는 쓰촨항공도 아니고, 썩은 땅콩 주다가 뜨지도 못하고 되돌아가는 칼도 아닌, 아시아나이므로 트레인 타지 않고 바로 6열 날틀에 올랐습니다. 비즈니스가 텅텅 비어 있기에 ‘빈 자린데 좀 앉혀주면 조케따’ 하며 지나가니 스튜어디스 아가씨가 호호호 웃습니다. 웃긴 하지만 아마 No라는 뜻이겠지요?
쬐그마 해서 250여 명 정도 탄 것 같습니다. 통로 양켠으로 3자리씩 있습니다.
여왕께서는 창가 경치 보는 자릴 좋아하시므로 저는 가운데입니다.
통로 쪽 옆자리 한 분, 제발 안 오시기를 빌었습니다. 안 오면 저희 둘 많이 편하죠!
옆자리 승객에게 다리 좀 오그려 달라면서 화장실 다녀오려면 장히 귀찮으므로, 와인 여러 잔 달라하면 안 되는 거죠잉! 보리술도 참아야 합니다. 비벼머글!
아니나 다를까 쓰펄노~마 니~하오마 등을 모국어로 하는 아가씨가 와서 앉습니다.
명동 동대문 남대문 다 다녀 오셨는지 비니루 봉지 종우 봉다리 대여섯 개 됩니다.
다시금 깨닫습니다. 기도하는 대로 다 들어주면 복권 산 사람이 다 1등 당첨되어 1인당 몇 푼 돌아오지 않으므로 그분께서는 절대로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진리를 말입니다.
(이 내용 브루스 올마이티 Bruce Almighty 맞죠? 모건 프리먼이 하느님이고...)
메이딘코리아를 미뻐하는 아가씨 덕분에 많이 쫑기지만, 학창시절 줄곧 배운 ‘참을 인 자가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는 교장쌤들의 훈화 말쌈을 되새기며 앞좌석 뒤통수에 붙은 모니터 켭니다.
다큐 뉴스 등 제치고 영화를 클릭! Suicide Squad(수어사이드 스쿼드)를 클릭합니다.
어디선가 Margot Robbie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더바 註釋 ; 우리나라 2세대 최고인기 걸그룹 소녀시대의 센터를 담당하는) 윤아와 동갑내기인 애가 주연을 한다고 대구 한일로 CGV IMAX에서 티켓 사며 젊은 것들이 그래 싸터라구요.
대단한 적들을 쳐부수기 위하여 정예병을 모집하는데, 범죄자 중에서 선발하는 장면이 참 멋있었습니다. 그러나 곧 이륙한다는 안내방송이 화면을 차지하면서 흥은 깨지고, 게다가 화면에 안내멘트하는 스튜어디스 아가씨와 비슷도 하지 않은 아가씨가 직접 시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얘가 나서 화면 껐습니다. 그러나 이게 웬일? 멘트 끝날 때까지 화면이 꺼지지 않습니다. 비벼머글!
잠을 청해 보지만, 타기 전에 마음이 들떠 아메리카노 키 큰 놈을 끽(喫)했고, 기장이 말을 몰던 사람인지 비포장된 길로 몰고 가니, 많이 흔들려 오던 잠도 달아납니다. 게다가 뒷줄 좌석엔 하나투어 직원이 소개해준 동행 할배들이 주루룩 앉아 계시니 의자를 뒤로 젖힐 수도 없습니다.
이분들은 본시 쓰촨 삼국지 투어를 8명이 신청했으나, 두 분이 중도 포기를 해서 1인당 차지 3만 원씩 물고 갈 뻔 했는데, 저희 부부 땜시로 18만 원 벌고 간다고 매우 방가방가 해주신 분들입니다. 연세도 지긋해 보이길래, 어디 노인정 모임이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일행 중 막내가 정년한 지 5년 차고, 그 중 한 분이 지난 여름에 상처(喪妻)를 하셔서 위로차 가신다는 말씀이셨습니다. 모두 다 고희(古稀)가 넘어 보이는데, 무슨 직장을 정년하셨냐고 다시 여쭈었더니, 대학이라고 하십니다. 자기들끼리 ‘했제이잉’, ‘아니랑게’, ‘저 거시기’ 등의 용어를 쓰시는 걸로 보아 호남이시냐고 했더니, 전남대라고 하셨습니다.
허걱! 내 연세도 이젠 에법인지라 젊은이들과 한 팀을 이루면 점잔 좀 빼고 있으려 했는데, 정년하신 지 5년 이상이라 하시니 다 일흔 넘으신 분들인 거였습니다. 자꾸 파고 들어가보니 젤 형되시는 분은 저와 띠동갑이시더군요. 잠은커녕, 의자 등받이 뒤로 젖히기는 더커녕, 차렷 자세로 네 시간을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통로 쪽 옆자리 꾸냥은 기내식을 먹고 곤히 주무시고, 저는 음식 먹은 뒤에 재료 탓인지 더부룩한 비위 탓인지 뿡! 하는 작업을 꼭 해야 했는데, 그걸 참고 가려니 영하 40도의 공중을 날아가는 중인데도 땀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마눌에게 지상의 불빛이 보이냐고 계속 물어보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이분들은 전남대학교 자연과학대학 교수님들이셨는데, 생물학과 두 분, 물리학과 두 분, 지질학과 두 분이셨습니다. 각 전공분야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생물은 자연환경보존학 전공 한 분과 생명유지활동순환학 전공 한 분이시구요,
물리는 광파 내지 레이져학 전공 한 분과 지진파장학 전공의 한 분이시구요,
지질은 암석생성학 전공 한 분과 암석분석학 전공 한 분이시더라구요.
키도 다양하셨습니다. 175cm대 두 분, 170cm안팎 대 두 분, 165cm대 두 분.
자연과학자들 답게 탐구심으로 불타는 형형한 눈빛,
이런저런 제자들을 숱하게 길러내신 관록 있는 표정,
슬기롭게 수신제가하신 여유가 느껴지는 포즈 등 굉장히 멋진 모습들이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늙은 동물들에게서는 멋진 모습을 잘 볼 수 없잖습니까?
쇠약하고, 굶주려 있고, 퀭한 눈빛, 살이 말라 어깨뼈가 뾰족하게 튀어나오죠.
그러나 우리 인간은 늙어서도 후배들을 압도하는 모습을 갖고 있는 분이 많죠? 그런 경이감을 느꼈습니다. 모두들 무림 각파의 장문인처럼 표표하단 느낌이었죠. 정말 상산4호가 아니라 상산6호를 보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답니다. 앞으로 5일간 모든 행동을 함께 할 분들이 바로 이분들이라는 그런 자랑스러운 기분은 생애 처음 느껴보는 황홀함이었습니다.
이러구러 네 시간 날틀을 타고 내리니, 조선족 가이드가 글자판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80이 넘는 키에, 눈빛이 눈 밖으로 쏘아져 나오고, 눈코귀입이 쪼그마해서 다부져 보이는 중년의 싸나이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깃발을 안 들고 다녀도 충분히 따라다닐 수 있는 조건인 것이죠. 버스에 오르자 그도 우리 8명밖에 안 되어 한 눈에 인원 파악 할 수 있겠다며 안도하는 눈치였습니다. 게다가 8명 모두 선생 출신이란 걸 알고는 아주 흡족한 표정이었습니다. 대체로 선생 출신들은 지식의 과다에 관계없이 쇼핑 센터에 데리고 가면 구매력을 마구 발휘하는 그런 순진함이 있기 때문이죠.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둘쨋날 이하의 성도 여행기를 올립니다. (0) | 2017.12.05 |
---|---|
[스크랩] 더바, 두보초당에서 고딩시절을 돌아보다 (0) | 2017.12.05 |
[스크랩] 국립 중앙박물관을 다녀 와서(글은 짧고 사진이 많음, 댓글은 디따 많음.) (0) | 2017.03.24 |
[스크랩] 둘쨋날 이하의 성도 여행기를 올립니다. (0) | 2017.03.24 |
[스크랩] 더바, 두보초당에서 고딩시절을 돌아보다 (0) | 2017.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