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시인 白水 정완영 선생의 가르침
백수 선생께서 주부 시조교실을 운영하실 때의 일이다. 주부들이 이용할 수 있는 한가한 낮 시간을 이용해 명시조 감상도 하고, 시조 작법도 강의하고 하던 어느 날, 어느 주부 한 분이 좀 늦게 강의실에 들어왔는데 ‘나는 지금 근심이 쌓여 가슴이 미어질 것 같다.’는 글자를 이마에 써 가지고 있는 듯한 표정이더라고 한다.
“왜 그런 표정을 하고 나오셨어요? 집안에 무슨 걱정거리라도……?”
“아침에 딸과 싸우고 화해도 못한 채 나왔습니다.”
“무슨 일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화해하시고 싶으세요?”
“예, 당연히 그렇습니다. 자식과 담을 쌓은 채 살 수는 없잖습니까?”
“예, 그러시군요. 그러면 제가 시키는 대로 그대로 해보실 의향이 있으세요?”
“가르쳐 주시면 고맙게 생각하고 실천하겠습니다.”
이리하여 백수 선생께서는 이리저리 하라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그 주부는 그대로 실천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 주부는 꽃시장으로 가서 화려한 꽃들을 한 아름이나 샀다. 그 꽃을 집으로 가져 와서는 큰 양동이에다가 물을 부어 가득 꽂아서는 딸이 귀가할 시간이 되자 아파트 출입문을 살짝 열어놓고 거실 끝 매트 위에다 놓았다. 그리고 그 꽃들 위에 미리 준비한 예쁜 색깔의 큼지막한 봉투를 가만히 올려놓았다. 꽃들과는 색깔이 달라서 바로 눈에 띄는 봉투였다. 그리고 거실과 연결되어 있는 주방에서 온갖 그릇들을 끄집어내 놓고는 물을 튀기며 부산하게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조금 있으니 딸이 들어오는 기척이 났다. 안으로 들어서는가 싶더니 짜증부터 부렸다.
“아니 다니기에 불편하게 여기다 웬 꽃이야?”
그러나 엄마는 못 들은 척 그릇을 부시고 있었다. 거실로 들어서던 딸이 꽃양동이 위에 놓인 커다란 카드봉투를 못 볼 리는 없었다. 봉투 겉에 ‘사랑하는 딸에게’라고 적혀 있었음은 물론이다. 봉투를 집어 들고 속지를 꺼내 읽어 본 딸은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엄마에게 달려와 뒤에서 껴안으며,
“엄마 잘못 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 라고 울먹였다.
엄마가 꽃 양동이 위에 준비해 놓은 보라색 카드에는 정성스러운 필체로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네가 아침에 밥도 먹지 않고 집을 나서면서 엄마에게 대거리하던 그 자리가 너무 보기 흉해 엄마가 잠시 꽃으로 가려 놓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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