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수필

[스크랩] 예초기는 좋은 놈으로 사 두었으니, 마눌의 목을 물어야 하겠습니다.

더바 2017. 3. 24. 05:42

차탁을 차에서 내려 주시는데, 눈이 부시도록 주변이 환해졌답니다.

매끈하고 차분하며 아름답고 아늑하도록 따뜻한 색깔이었습니다.

일주일이나 손때 묻은 정성을 사포로 다 갈아내어 지우신다고 지우셨지만 오히려 빛으로 내려앉았음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무게는 굉장하여 저 같은 약골은 혼자서 들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농막 거실로 날라다 놓고 나니, 주변에 있는 집기들이 다 초라해지고 말았습니다.

끼워맞춤한 틈들이 실금으로만 보일 뿐 불개미도 기어들어갈 수 있는 틈이 없었습니다.

 

이 차탁을 직접 배달까지 해 주셨으니, 전 머라 할 말이 없뜹니다.

그저 머리만 조아릴 뿐!

ㄴㅁㄲ님 말씀이 '이 차탁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만 살아있으소!' 하셨으니,

고려 때 만든 목조 건축물 부석사 무량수전이나 봉정사 금당의 수명을 보건대,

앞으로 7~800년은 더 살 가망이 충분합니다.

이젠 학실히 느리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영화나 소설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 벨라 스완의 애인 에드워드 컬렌처럼 계속 살게 되겠지요.

그러나 혼자 몇백년을 계속 살 자신이 없으니, 할 수 없이 울 마눌의 목을 물어야 하겠군요.

 

좌우당간 ㄴㅁㄲ님 말씀은 '수고료나 재료값은 못받는다.'고 하시며,

제가 몸으로 때운 무엇으로 갚으라 하셨으니..ㅠㅠ

손재주가 본시 없는 저는 도자기도 안 되고, 그림도 안 되고, 글씨도 안 됩니다.

다 해 보았습니다만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도로(徒勞)에 그치더라구요.

남은 방법은

ㄴㅁㄲ님 ㄱㅇㅎㄴ님 몇백년 사시기를 빈 뒤에 

제가 다시 몇백년간 더 살면서  벌초를 해드리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쪽마루가 부러워서 지나가는 한마디로

수면제를 사야겠다 랑이 단이 재우자면

랑이 단이 잠들어야 희호재를 월담하여

때바리난 쪽마루를 차 트렁크 슬쩍실어

돌마래미 내 농막에 철퍼더덕 훔쳐두고

여름이면 개울가에 겨울이면 가작 속에

이리 뉘고 저리 돌려 게으름핀 팔베개며

친구 불러 수담이며 손주들과 옹알하고

맏아들로 천년만년 물려주랴 하였는데

꿈에 그린 그 일들이 창망 중에 실현되니

어이 할꼬 내 전생에 무삼 복을 지었길래

오늘 이런 광영됨을 복넘치게 받들었나?

팔자에도 없던 횡재 분에 겨운 일이로세

오늘부터 이 차탁을 아침 저녁 닦고 광내

두 분 베풂 평생토록 갚을 다짐 할 수 밖에

더바야 말 잔치는 됐고 온몸으로 실천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 바람재들꽃
글쓴이 : 더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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