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세척상(世上洗滌相)>
일단 한 마디로 요약하면 다음 문장과 같습니다.
[그림자를 뒤로 하고 빛을 향해 나아가시니, 좋은 일이 가득하겠다.]
그러나 나무꾼님께서는 제가 짧게 말하면 다음과 같이 생각하십니다.
[더바가 내 작품이 별로라고 생각하는구나!]
그래서 할수엄씨 수다를 좀 떨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정말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작품의 내용은 주제와 부제로 나누어집니다.
주제는 동적이고 부제는 정적입니다.
부제가 되는 두 분 노인은 컴컴한 데 앉으셔서 잘 보이지 않지만,
빛 가운데 앉아 계시는 것이니, 광영의 자리입니다.
영광된 그 자리에 이미 올라 느긋하게 자기의 위치를 즐기고 계십니다.
그 영광된 자리가 월등히 더 높은 건 아니지만,
주제의 할매는 그리로 가고 싶습니다.
자기의 뒤는 어둠이니까요.
이러한 심리를 드러내는 주제의 할매 옷차림도 기막히게 고르셨습니다.
하의가 검고, 상의가 흽니다.
지금 컴컴한 데 처하고 있지만, 밝은 것을 지향하고 있는 심리가 잘 드러납니다.
이런 것을 미리 작정하고 촬영하신 것은 아닐 터이지만,
나무꾼님은 프로이시기에 이런 노인이 저절로 골라집니다.
지팡이 각도도 이런 각도로 찍혀야 합니다.
수직으로 곧게 서 있으면 행진하고픈 마음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가시는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어야 동적인 맛이 한결 진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배구를 할 때, 상대가 서브를 넣으려 하면 감독이 자세 낮추라고 소리지릅니다.
왜 자세를 낮추어야 할까요?
여러분들도 가만히 서 있다가 갑자기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려 해보세요.
움직이기 전에 살짝 다리를 구부리고 허리를 낮추었다가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연습을 하든 안 하든 누구나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미 구부리고 있는 사람은 어떨까요?
이미 수그리고 있었으니까 바로 움직이게 되는 거죠.
그래서 0.5초 더 빨리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수그리고 있던 사람은 수그릴 필요가 없으니까 바로 움직여서
상대의 서브 공을 너끈히 받아 낼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구 감독들은 서브 받으려고 할 때, 수그리라는 주문을 하게 됩니다.
할머니 자세 보세요. 지팡이 각도와 일치합니다.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온 전신에 나타나고 지팡이에도 전염되어 있죠.
왜 그 방면으로 나아가시려 할까요?
그 방면이 할머니의 목표점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거기 가면 틀림없이 여기보다 더 편하고 더 즐겁고 더 행복할 겁니다.
안 그렇다면 뭐하러 그리로 가시려 하겠습니까?
그곳이 비록 똥집이고 오두막이고 식구들 버글버글하는 곳이라도 말입니다.
그 행복한 곳을 찾아서 가시니, 지금보다 조금 뒤에 더 행복하실 겁니다.
이미 도착해서 앉아 계시는 할매들보다, 지금 걷는 할매가 더 행복하십니다.
우리 인간의 행복은 도달점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곳으로 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여러 철학자들이 이미 설파한 바입니다.
인생의 끝, 즉 죽는 순간이 행복하겠습니까?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이 길을 걸어가는 이 과정이 행복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할머니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신 분입니다.
이 행복을 카라멜로 잡아내신 우리 나무꾼님은 구체적으로 무얼 찍으려고
셔터를 누르시지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그냥 [아, 이건 확실히 뭔진 모르지만, 느낌상 뭐가 된당!] 이런 식으로 하실 겁니다.
그런데 프로는 그게 곧 작품이 되는 거지요.
그 작품에 의미를 찾아내서 부여하고 즐기고 행복해 하는 건
우리 관람자들과 평론가들의 몫인 겁니다.
수다를 길게 떨면 쓸 말이 적은 법은 법입니다.
그러나 지난 초여름부터 짧게 썼다고 나무꾼님이 섭섭해 하시니,
저의 모자라는 식견으로 이리 부산을 떨어봅니다.
석 달 정도 계속 짧게 썼지만, 길게 감탄하고 있었음을 믿어 주십시오.
한 미디만 더! 제2부제에 전 주목하고 싶습니다.
찍다보니 찍힌 게 아니라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작품 아래 하수구 맨홀 뚜껑 보이시죠?
전부를 나타내지 않고, 왜 요만큼만 나타나게 찍으셨을까요?
하수구는 더러운 물이 흘러가는 곳입니다.
세상의 더러움을 물로 씻어내려 아래로 아래로 내려 보냅니다.
대신 세상은 깨끗해지는 거죠.
이런 세상 정화의 시설이 얼마나 큰 지 모르게 일부만 작품에 나타나 있습니다.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고 싶은 우리 관람자들의 욕구만한 크기로
세상은 씻어 내려집니다.
우리들의 기대만큼, 우리들의 의욕만큼, 우리들의 꿈만큼 세상이 맑아지겠죠.
여러분, 이 작품을 읽으시고, 기대 의욕 꿈 크게 가지세요.
그게 아마 나무꾼님이 이 작품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보람이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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