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감상

[스크랩] Re:인정상(인지상정 모습)

더바 2010. 6. 24. 20:41

인정상(人情相)

 

 

 

나무꾼님은 이 작품 제목을 「이게 누구야!」라고 붙여 놓으셨네요.

이 두 분께서 모처럼 만나 반가워하는 순간을 포착하셨나 봅니다.

상상력 탁월하신 한물결님은 황야의 건맨 아니 건우먼으로 보셨네요.

두 노인 오른편 손 동작이 정말 그렇게도 보입니다.

총잡이들이야 권총을 뽑아 들겠지만,

이런 우리나라 할무이들은 어떤 손 맵시를 가지셨을까요?

전지전능하신 손 맵시를 가지셨지 않겠나 이렇게 새각해 봅니다.

육아, 농사, 살림, 요리, 바느질, 김장 간장 된장 등 장담그기, 남편 건사 등…….

이 손으로 이 나라 이끄는 명사들도 길러 내시고,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있는 듯 없는 듯 맡은 일을 해내는 위대한 서민들도 길러 내시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자신은 늙어서 꼬부라진 위대한 할무이들.

정말 우리가 밥술깨나 먹고사는 게 다 이런 할무이들의 공이 아닐까요?


저는 이런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멀리 계시는 할무이의 장보기 카트부터 살펴보시죠.

조그마한 바퀴지만 이 넓은 세상 건너느라 수없이 구르고 굴렀을 것입니다.

이는 바로 할무이의 삶을 은유하고 있는 듯합니다.

자동차 바퀴처럼 빠른 속도는 아니더라도 쉼없이 구르고 굴렀겠지요.

빠르다고 좋은 바퀴이고, 느리다고 못난 바퀴인 것은 아닙니다.

바퀴 크기에 비해서 저리 큰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만 봐도 대단합니다.

이 할무이의 삶이 또한 저랬을 것입니다.

자기 체중의 수천 배 되는 삶을 나르고 짊어지고 밀고 다독거리셨을 것입니다.

비록 삐까뻔쩍 눈부시진 않더라도 조용히 구르고 굴렸을 것입니다.

그렇게 꾸준히 구르는 힘으로 자식들을 길렀을 것이고, 손자들도 길렀을 겁니다.


그러면 누가 불렀을까요? 당연히 오른편 할무이께서 부르신 거죠.

허리가 구부러지지 않은 편에서 먼저 발견하셨겠죠.

허리 구부러지면 땅만 보며 걸어야 하잖습니까?

그러나 구부리고 다니는 게 나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집중력이 생길 테니까요.^^

베토벤의 집중력 향상에 귀가 멀게 된 것이 도움되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많은 평론가들이 교향곡 9번 합창을 가장 멋지다고 했다더군요.

누가 불러서, 그에 대한 대답 하느라고 상반신을 일으킨 모습이 역력하잖습니까?


검은 옷을 입은 할무이가 흰옷을 입은 할무이를 불렀습니다.

흑이 백을 부르고 백이 응답을 했습니다. 마치 바둑 두시는 거 같습니다.

바둑을 수담(手談)이라고 하듯이, 이 작품의 모델들은 분명히 대화를 나눕니다.

이 장면 다음에 벌어질 이야기 내용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 답을 작품 뒤 가장 먼 배경에서 찾았습니다.

차양막 위로 전봇대와 나뭇가지가 어우러져 수풀 림(林) 자처럼 보이잖습니까?

우리 인생살이가 숲 속처럼 복잡하고 컴컴하고 얼키고 설켜 있죠.

그러니 두 분 나누신 이야기가 그런 얼키고설킨 인생,

어떻게 풀고 헤쳐나왔나 하는 그런 이야기겠죠, 뭐. 아님 말고!^^

또한 얽히고설킨 것을 풀어헤치고 나와야 가치 있는 삶이 되는 것이겠죠.

이 두 분 연세나 자세로 보아 충분히 잘 헤쳐 나오신 걸로 보입니까?


그건 그렇고 왜 차양막 앞에서 만나게 되었을까요?

차양막은 너무 강한 햇볕을 막는 역할을 하는 사물입니다.

햇볕은 물론이고 먼지나 바람이나 해코지하려는 모든 것에 대하여

일종의 보호막이자 호신장비인 셈이지요.

노인이 되면 몸이 유리그릇 같아지므로 너무 강한 것은 좋지 않습니다.

너무 뜨거워도 몸에 해롭고, 너무 차가워도 해롭습니다.

건강 안 좋은 사람이 목욕탕 가서 냉탕 열탕을 오가면 몸이 깨지고 말죠.

그래서 노인네에겐 저런 보호막이 꼭 필요하다는 걸 은근히 표현하는 것입니다.

나무꾼님의 작품 속엔 이런 세심한 배려가 항상 숨어 있죠.

아니 배려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알맞은 상태로 촬영이 되는 경지시겠죠.


부르면 대답해야 합니다. 불렀는데 대답 없으면 참 무안합니다.

세상 이치도 그렇습니다. 누가 부르든지 대답해야 합니다.

이야기하면 들어주어야 합니다. 듣고 나서 그 말대로 실행하든 말든

그건 그때 가서 결정하면 됩니다.

이야기하면 다른 델 쳐다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참 매몰찬 성격이죠.

우리 바람재들꽃 카페가 이리 정이 흘러넘치는 까닭이 부르면 대답 잘하는 데 있습니다.

공자께서는 부모님이 부르면 입에 있던 음식을 뱉어 내고 답하라고 하셨습니다.

대답은 즉각 해야 하고, 성의가 있어야 합니다.

대답을 하는 것은 부르는 것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일상을 꾸려가는 요체죠.

그리고 인간 생활의 기본 바탕인 셈이지요.

나무꾼님 이런 작품 돈 받고 파는 걸 포기하시고, 우리 카페에 내놓는 건,

우리 모두 대답을 잘 하기 때문입니다.

대답 잘하는 덕분에 수 억짜리 명작을 우리 모두 공짜로 관람하는 것이지요.


대학동기 카페가 있는데, 거긴 저 말고는 아무도 댓글 안 달아 줍니다.

2년 정도 지나고 있는데, 이젠 거의 쓰는 사람도 없습니다.

장터에 사람 끓지 않으면 모든 장사는 헛방입니다.

대답하지 않으면 사람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에 따라 오가던 인정도 사라집니다.

그래서 제가 인정상이라 했습니다.

우리 모두 부르면 대답합시다.

출처 : 바람재 들꽃
글쓴이 : 더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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