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얘기2

새재 전설 시리즈~2, 제6화

더바 2015. 11. 21. 19:52

새재 전설 Series~2

 

6보 쾌재(快哉)를 부르는 경빈

 

대국은 사흘째다. 사시가 제법 지났는 데도 사신이 대국장에 나오지 않는다. 경빈은 사람을 보냈다. 곧 밭은기침 소리가 나며 사신이 대국장에 들어섰다. 경빈은 일어서서 돈수하고 인사를 건넸다. 쾌재를 부르는 내심과는 달리 놀란 표정을 지으며,

따렌, 웬노무 기침을 그리 해대고 그러심둥?”하며 시침을 뗀다.

내레 거 방이 너무 뜨거워 이불을 차던지고 잤더니 고뿔에 걸린 듯하오다.” 에이취!

아고~! 이를 워쩐담? 댕장 이 불목한이놈을 잡아다가 물고를 내겠슴둥!” 나갈 기세.

그럴 필요 없승둥. 이불 차던진 게 내 탓이지, 그놈 탓이겠슴둥?” 손을 들어 막음.

, 그려도 그렇지 어더렇게 사신 따렌 주무시는 방에 한열(寒熱)을 못 맞춘단 말임둥? 내 이눔을 거저 막 쌔리 패 쥑이뿔…….”라며 팔을 내젓는다.

사신은 경빈을 만류했다. 이리 보면 상당히 점잖은 사람인 것도 같았다. 좌우지간 중국 쪽 종사관이나 관전자들도 사신의 고뿔에 관하여 더 이상 거론하기 곤란해진 분위기가 되었다.

경빈은 상궁을 시켜 고뿔에 좋은 탕약을 내의원에서 한 식경마다 올리라고 명을 전하였다. 그러나 사신의 컨디션은 종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 사신은 조선에 처음 오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조선의 사신접대형 고뿔에 대해서는 전혀 항체가 생기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의국은 갑자기 변한 사태에 대하여 어리둥절하기는 하였으나 들여다 본 수에 대하여 잇지 않고는 안 될 상황이었으므로 101로 이었다. 백은 고수답게 유려한 솜씨로 106까지 두텁게 싸발랐으나 후수가 되는 바람에 헛공사가 되야부렀다. 역시 27도가 옳은 방법이었다. 그리고 어제부터 노리던 흑 107이 신랄했고, 112까지 무릎 꿇게 되어서는 백이 띵해졌다. 그렇다고 107에 대하여 <참고도-28>처럼 끊고 뻗고 해봤자 흑111로 축머리를 당해 우변에서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너무 늦게 시작했기에 몇 수 두지 않아 점심 식사가 있었고, 사신은 고뿔을 의지로 이겨내고자 곧바로 두자고 하여 오후 대국으로 접어들었다. 사신의 밭은기침은 탕약으로 다스려지지 않았다. 눈동자까지 벌겋게 열이 올랐다. 두통도 시작되었나보다. 머리를 자주 감싸 쥔다. 경빈은 속으로 찔리는 게 있어서 사신에게 넌지시 뜻을 불어 본다.

따렌, 오늘은 이만 봉수하시고, 명일에 다시 시작하오심이 워떠하겠슴둥?”

울리 살람 이 정도 고뿔로는 끄떡없다 해. 걱정 붙들어 매시람둥.”

그러면 탕약에 진통제도 좀 곁들이라 명할까보레?”

거 그냥 두시라 해, 조선에 뭔 진통제가 있겠슴둥. 괜히 따옌[大烟;아편] 섞어 멕이고 잘 안 나으면 또 멕이고 해서 누굴 따옌꾸웨이(大烟鬼;아편쟁이) 만들 작정임둥?”

, , , 그럴 리가 있겠슴둥? 따렌께서 너무 힘들어 하이까네 해본 소리우라!”

사신은 연신 기침을 해대면서도 내의원에서 내오는 갈근탕, 쌍화탕, 길경탕 등으로 견디고 있다.

 

경빈이 다시 판으로 눈을 돌려 보니, 의국은 포도송이 다섯 점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려 113을 두었다. 그러나 경빈의 생각으로는 흑이 113으로 먼저 119 근처에 두어 백세를 삭감해 보고 싶은 장면이었다. 큰 위협이 안 되는 이 수를 보고 사신은 아픈 중에도 정신을 차려 좌하귀 114로 기어들어갔다. 언제 열이 올라 수읽기가 헷갈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 수는 상당히 컸다. 115는 울며 겨자 먹기. 또 백 116113을 씌워 113의 그 왼편(H-9)으로 찔러 끊는 수를 가늠하면서 중앙을 방어하였으니 좋은 수였다. 흑은 117로 선수 되는 곳을 두어 조금이라도 이득을 챙겼으나 백이 118로 받은 다음에는 앞이 막막하였다. 이제 둘 자리가 없는 것이다. 사신의 고뿔 기운이 의국 자신에게도 옮겨 오는지 아직 기침은 나지 않으나 목이 간질간질해졌다.

 

사실 경빈은 119를 두기 전에 속으로 패배를 느끼고 있었다. 착오 없이 끝내기를 한다 하더라도 두어 집 모자라는 형국이다. 이렇게 되고 마는 것인가? 불목한이의 도움을 받아 사신을 고뿔에 걸리게 한 자신의 꼼수도 헛지랄이 되고 만 것이다. 비벼머글! 원심 스님이 갑자기 그리워졌다. 그 스님만 곁에 계신다면 이 위기를 헤쳐 나갈 묘수를 훈수 받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봉수를 하게 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래서 육의전으로 나가 고수들로 하여금 다음수를 연구하게 하여 좋은 처방을 받아 오는 것이 마지막 남은 수법이다. 다음 한 수에 말 2천 필이 걸린 것이다.

 

경빈은 별별 소리를 다하여 사신으로 하여금 봉수를 받아들이게 하였다.

따렌! 따렌께오서 지금 조선 고뿔을 무시하시고 계속 이렇게 진행하시다가는 저희들이 경을 칠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사오니 다시 생각해 주시라 해. 쉬었다 두더라도 이미 두어진 수가 지워지는 것도 아니요, 판이 흔들려 돌이 굴러 떨어졌다 하더라도 복기하면 아무런 이상이 없을 일을 가지고 따렌께오서 무리하게 대국하시다가 큰 병에라도 덧씌움 당하게 되면, 귀국길이 몇 달이 늦어질지도 모르며, 그렇게 되었을 시, 우리 조선은 피샤(陛下;폐하)의 분노를 피할 수 없게 되옵는지라, 이틀이고 사흘이고 휴식을 취하야 병을 다스린 다음에 천천히 두어도 나무랄 이 하나 없응께 그 편이 훨씬 옳지 않겠슴둥?”

사신도 경빈의 말을 들어보니 그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병이 깊어져 달포나 더 늦게 귀국하게 된다면 황샹(皇上)의 꾸지람을 피할 길이 없으리라. 또한 이 상태로 더 두다가 말 2천 필을 따지 못했을 때, 자신이 챙길 보너스가 사라지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자 더 이상 고집 피우지 않고 경빈의 당부를 받아들였다.

 

의국을 대국장에 남겨둔 채 경빈은 가마꾼들을 재촉하여 육의전으로 내달렸다. 종로에 갑자기 가마꾼들의 짚신 타는 냄새가 진동하였다. 그만큼 경빈의 재촉은 도를 넘고 있었다. 가마꾼들도 궁녀들을 통하여 들은 바가 있는지라, 이 가마에 탄 경빈이 우리나라 말 2천 필을 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전력질주를 아끼지 않았다. 경빈이 도착하여 안으로 뛰어 들어가니 건과 가게에는 이미 파발이 도착되어 백118의 수가 놓여져 있었고, 다행히 아직도 쎈돌이라는 소년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경빈은 반가워 쎈돌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아이구 이 사람 여기 아직 있구먼! 어서 이리 앉아 보게.”

마마, 갑자기 어인 일이시오니껴?”

아이고야 마 클나따 아이가? 어더렇게 두어야 이 판세를 뒤집을 수 있을꼬?”

이미 글러먹은 판인데 뭔 수가 있을랑게오?”

그래도 모든 가능성을 다 생각하여 몇 수만 갈치 다오, 이 사람아.”

그라마 이리 함 놔 보소. 이거 말고는 방벱이 없능기라요.”

소년 기성 쎈돌이 가르쳐 준 수가 바로 119였다. 간 큰 넘이 널장사 하는 수였다. 이렇게 들어가서 잡히면 지는데, 안 들어가고 끝내기를 아무리 잘 한다 혀도 뒤집기는 어려우므로 모험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밤늦도록 좋은 조선 약재에 황새 된똥을 섞어 다리고 다려 영빈관으로 들이고, 맹인 안마사까지 동원되어 병자의 혈맥을 잘 풀어준 덕택에 다음날 아침 사신은 상당히 호전된 모습으로 사시 정각에 바둑판 앞에 나타났다.

 

사신은 119를 보자 상당히 긴 시간을 들여 수를 읽더니 120으로 씌워 왔다. 의국은 곧바로 127 자리로 달아나는 것은 승부가 안 된다고 보고 123에 붙여 버티었다. 그러자 너무도 뻔한 124 자리를 두기에 앞서 사신은 반 식경이나 생각한 끝에 겨우 돌을 놓았다. 형세 판단에 있어서 아직 완벽한 경지에 오르지 못한 의국인지라 이런 모습을 보고 어쩌면 지금부터가 승부가 될 지도 모른다고 희망을 품게 되었다. 경빈이 의국을 쳐다보니 안색이 조금 전보다 훨씬 맑아져 있다.

 

113. 이 수는 포도송이 흑 5점에 대하여 아래 그림 <6-2>도처럼 백이 A로 두고, 흑이 B로 받을 때 백이 C로 괴롭히는 수단에 대하여 대비한 것인데, 정말 백이 A로 두어 오면 바로 D에 두어 큰 일이 없는 곳이었다. 따라서 E로 두는 것이 좋았다.

 

117118과 교환하여 손해라 보이지만 중앙 쪽의 허점을 보강한 것이다. 그리고 흑 119. 승부수였다. 이 수로 125 자리를 먼저 두고 백이 123 자리로 받을 때, 흑이 125의 윗자리(Q-8)에 두면, 백이 90의 윗자리(P-9)가 상식적이지만, 이래서는 모자란다고 보았기 때문에 쎈돌 고수가 이렇게 가르쳐 준 것이었다.

 

경빈도 속으로 판세를 가늠해 보았으나 아무래도 말 2천 필을 뺏기지 않기는 힘들 것 같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는데, 의국이 자기가 시키는 대로 119로 두는 것을 보고는 이 사람도 고집을 꺾을 때는 꺾을 줄 아는 바돌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승부란 이런 것이고, 모자라는 줄 알면서도 끝까지 끌려 가다가 힘 못 써보고 그대로 주룩 밀려 버린다는 것은 젊은이로서의 패기가 과연 있는지 의심스러운 일 아닌가 말이다. 다시 의국이 이뻐 보였다. 자신의 명예만 걸린 게 아니라 자국의 경제가 휘청거릴지도 모르는 이때에 자기의 고집만 피울 수는 없는 것이고, 일말(一抹)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아니꼬움을 누르고 한번 따라보는 것이다. 그것이 애국의 수단이다.

 

120. 기세였다. 화점 위(O-10)에 두어도 되지만 젊은이에게 쭈그러들기는 싫은 기분이다.

123. 옥쇄(玉碎)를 각오하고 과감하게 몸을 던진 수이다. 이 수로 127자리에 달아나는 것으로는 모자란다는 쎈돌의 훈수이다.

126. 과한 것 같다. 이 수는 <참고도-29>처럼 중앙을 날일자로 씌우는 것이 옳았다. 그랬으면 흑은 127로 끊어 몸부림을 쳤겠지만 이하 136까지 살길이 막막할 뿐이었다.

 

 

135. <참고도-30>처럼 흑이 이렇게 선수하고 백이 136으로 받을 때 흑은 137을 두어 연결이 가능하니 안성맞춤이지만 판세가 너무 바빠 30135를 둘 기회가 없었다. 본보의 흑 135에서 백 142까지 외길 수순이다. 백은 <참고도-29>와 같은 확실한 승기를 놓친 형국이다.

 

사신은 142를 두고는 머리를 쥐어박으며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쉰다. 표정만 봐도 글렀다는 느낌이 절로 흐른다. 경빈은 손에 땀을 쥐고 수를 따라 가다가 여기에 이르러 등뼈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허리와 등을 쭈그러뜨린 상태가 펴져서 몸통이 바로 서게 된 것이다.

 

================= 아기다리고기다리, 제7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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