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접근을 위한 미행
다들 키가 크거나 적당하고 뒷 태가 아름다웠지만 가운데 아가씨는 일단 실격이었다.
세 사람 모두 잘 자란 왜무처럼 다 쪽 곧은 다리이고,
발목도 잘록해서 아킬레스건 양켠이 오목하게 홈 파인 멋진 종아리였다.
그런데 바깥의 왼편 오른편 두 아가씨의 다리에는 발그스럼한 발진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가운데 키 큰 아가씨는 그런 자국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색깔의 발진이라면 틀림없이 모기에게 물린 자국(wheal)일 텐데…….
목표탐지기능 자유비행기능 안전착륙기능 정량흡혈기능 소화배출기능 무한출산기능
目標探知機能 自由飛行機能 安全着陸機能 定量吸血機能 消化排出機能 無限出産機能
이런 대단한 기능들을 갖춘 데다가 공룡과 함께 생존해왔던 위대한 역사.
영화 『쥐라식 파크』이후 호박(琥珀) 속에 박힌 무늬로서의 존재에서 깨어나,
유전자 보존체로서의 자격을 획득하여 전 세계 청소년들에게
과학자로서의 길을 걷겠다는 찬란한 꿈을 꾸게 한 위대한 작은 거인 모기.
허나 이제 흡혈기능만을 문제 삼은 사람들의 일방적 몰아세움에 쫓기는 신세.
시세(市勢)가 약해 분무제(噴霧劑) 모기약을 자주 쳐주지 않는 이런 소도시에서
여름 내내 모기에게 한 번도 물리지 않고 지낼 수 있는 체질이라면,
그 피가 시금털털하니 맛이 없거나, 현저한 냉혈 꾸냥(冷血姑娘)이란 말 아닌가?
모기도 안 빨아먹는 피를 가진 아가씨를 고를 수는 없는 일.
키 크고 늘씬한 몸매이고 가장 의존형의 성격이겠지만 일단 가운데 아가씨는 제외했다.
스피시즈2에서도 싸늘한 매력의 결정체 Natasha Henstridge는
번식하기 위하여 골랐었지만 당뇨병이 있는 남자를 대번에 알아내곤,
관계 맺기를 거부하며 그냥 나가려 하는데, 남자가 매달리니까,
자기도 좋아서 키스하는 척하며 강력한 혓바닥으로 뒷목까지 뚫어 죽이지 않던가?
비유가 좀 거칠지만, 모기도 안 깨무는 여자를 내가 택할 수는 없지 않나?
오른편 아가씨는 오른 손이 자유로운 걸 좋아하는 형이니 자립심이 강할 터이고,
왼편 아가씨는 자기 오른 손으로 가운데 아가씨의 팔을 잡고 가는 것으로 보아,
좌우 두 사람 중 더 의존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내 취향에 맞는 아가씨이니 일단 점을 찍어 둔다는 것이다.
얼굴을 보기 전에 가능한 한 이렇게 마음을 정해 놓는 것이 올바른 일이다.
맹인들은 시력이 없어서 상대의 미모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므로,
배우자 선택에 있어서 진정한 달인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밝은 눈이 오히려 장애가 되는 이치가 바로 이런 것이렷다.
세 사람을 추월하면서 말을 걸어야 하는데, 별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일단 궁리하면서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세 사람은 뭔가 재미있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다.
가끔 목을 옆과 뒤로 휘저으며 젖히고 웃는 폼으로 보아 그건 분명하다.
여자는 앞 얼굴 가리는 머리칼을 뒤로 추스르기 위해서도 목을 젖히지만,
까르르 웃기 위해서도 목을 젖힌다. 이때 머리칼 추스름은 보너스가 된다.
가끔 남자들 중에도 장발인 경우 이런 제스처를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동작이 여성들만큼 매력적이냐 하면, 절대 아니다.
그때 머리칼이 부스스 엉키면서 찰랑찰랑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으면
또 그 꼴을 만약 남자가 뒤에서 본다면 좀 칙칙하게 보인다.
칙칙하다는 건 자기 관리에 소홀하다는 느낌을 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가씨들은 긴 머리칼을 찰랑찰랑하게 하려고 틈만 나면 매직기로 다리지 않는가?
난 예쁘지는 않아도 참을 수 있지만, 느낌이 칙칙한 여자는 싫다.
찰랑찰랑하는 머리칼, 이야말로 남자들이 절대로 갖출 수 없는 여성만의 무기다.
세 사람은 역 광장을 지나 큰 길을 건넌 뒤 시장통을 지나 도서관 길을 오른다.
올라가는 품이 틀림없이 도서관으로 가는 걸음이다.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은 절대 도서관으로 가지 않는다.
바삐 걷는다면 열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려는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표정까지 어둡다면 돈을 빌리러 가는 경우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세 아가씨는 느긋한 걸음으로 약간의 오르막을 오르고 있다.
그렇다고 열심히 공부하러 가는 자세도 아니다.
시험 준비를 위해 공부하러 도서관엘 가는 사람들은 눈빛이 공허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좋아서 미쳐서 목말라서 하는 일에는 눈빛이 초롱대지만,
쫓겨서 공부하거나, 떠밀려서 공부하게 되면 오히려 눈빛이 공허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책을 빌려서 열심히 독서하기 위해 가는 분위기도 아니다.
그런 열정이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떼로 몰려다니지 않는다.
고독을 일삼고 즐기고 자랑하고 떠벌리고 오독오독 씹으며 다닌다.
분위기를 보니 대학생은 아니고, 이미 취업에 성공한 직장인임이 틀림없다.
중소도시에서의 직장이란 그리 많은 월급을 주는 곳은 없다.
탁월한 미모도 요구하지 않지만, 그리 높은 대우도 해주지 않는 수준.
아가씨들의 옷차림을 보니 직장에서의 제복을 갈아입은 흔적은 없다.
신발이 제 각각이라면 유니폼을 입었던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회사라는 이야긴데,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9월 초는 여름의 끝자락이라 아직 해가 길긴 하지만
개인회사라면 이 시각에 퇴근할 수 있는 직장은 없다.
일반 공무원이나 학생들의 퇴근 또는 하교 시간 이후가 사업상 골드 타임 아닌가?
세 아가씨의 직업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화려하다면 할 수도 있는 편.
허나 옷차림으로 보아 당당한 전문직 여성들임이 느껴졌다.
이들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 사이라, 제법 장시간의 수다가 필요한데,
이런 소도시에서 찻집이나 휴게실이 마땅찮으니
도서관 야외 나무그늘을 이용하여 회포를 풀 심산인 것이 틀림없었다.
왼편 아가씨가 가운데 아가씨의 팔을 잡고 걷고 있으니,
오른편 아가씨는 가운데 아가씨의 입장을 고려해 그녀의 팔을 잡을 수는 없고,
슬쩍슬쩍 어깨와 팔을 부딪치면서 자신의 의존심을 해소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에게 참 곤란한 일은 내 목표가 왼편 아가씨라는 것이다.
두 사람의 사이를 더 가까이 부추겨 주면 한 사람이 떨어져 나가,
하나가 외롭게 되었을 때 접근하기가 아주 쉬운 법인데,
왼편 아가씨의 의존심이 강하여 가운데 아가씨의 팔을 놓아주지 않으니,
오른편 아가씨와 가운데 아가씨를 더 가까이 밀착시키는 일은 어려울 터였다.
속으로 이러한 걱정을 하며 따라 걷는 사이에 도서관 아래 지어 놓은 정자에 도착했다.
육각 나무 정자인데, 달랑 올라앉아도 되고, 신발 신은 채 다리를 걸쳐 앉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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