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원(報怨)의 길
제2편 완급대결(緩急對決)
학발노인이 돌을 쥐자 원심은 흑돌 한 개를 판 위에 놓았다.
원심이 맞추지 못하여 오히려 백을 들게 되었다.
박소저가 대국 개시 선언을 하고 손뼉을 한번 치자,
노인은 회심의 미소를 머금더니, 우상귀 소목에다
요다의 도끼 타법으로 땅 소리가 나게 첫점을 놓는다.
젊은 원심에게 겁을 주기 위하여 삼 갑자의 내공을 얹은 팔뚝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원심은 금강산에서 방장스님에게 배울 때,
잡기(雜技)는 기선에 제압당하면 안 된다는 가르침을 떠올리며
노인의 심기를 긁기 위하여 바로 일자로 걸친다.
======이 아래 이야기들은 놓여지는 돌들에 대한 해설이니 이야기 독자는 읽지 마세요.^^
======이야기로 돌아갈 때는 다시 이 표(===)를 넣어 두겠습니다.
노인은 기가 막힌다는 듯, 원심을 힐끗 쳐다보더니 입을 씰룩거리다가
“널 큰 놈이 간 장사 한다더니…….” 중얼거리면서 대각선 화점을 차지한다.
또 소목을 두었다가는 역시 걸침을 당하여
젊은 것에게 오히려 기선을 제압당할까 저어했을 것이다.
원심은 또 걸쳐 가리라 다짐을 했으나 화점에 걸쳐 갈 수는 없는 일.
우하 소목으로 일단 받아 두었다.
노인은 빈 좌상을 역시 소목으로 받는다.
원심은 잠시 머뭇거린다.
좌변을 갈라칠 수도 있지만,
어차피 싸움을 붙어야 무슨 전기가 생기리라 생각하였다.
숨이 긴 바둑으로 나가다가는 노인의 노회함에 휘둘릴 것 같아서
우상귀 소목에 걸쳐갔다.
노인은 콧김을 킁 한번 내뱉더니, 평범하게 7로 아래를 받는다.
원심이 8로 늘자 노인은 호구를 치지 않고, 9로 전개했다.
원심은 어디까지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하여 10으로 급하게 제쳐 내려갔다.
노인이 다시 힐끗 원심을 쳐다보더니, 11로 멀찌감치 벌려 버린다.
아직 너무 초반이라 널은 데가 많은데,
기선을 제압하려고 무리하게 제쳐간 10의 돌이 오히려 초라해 보인다.
원심의 적극적인 대시와 노인의 음흉하고 노련한 비켜섬이라서
판이 조용해 보이지만, 서로의 기세가 눈에 안 보이지만 불을 뿜는 순간이다.
원심은 참아야 된다는 것을 유점사 방장스님께 백일 동안 배운지라,
지금 당장 7의 한점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걸 느꼈다.
좌변이 통째로 비어 있지 않은가?
좌변을 가운데 점으로 갈라쳐 가는 게 가장 무난해 보이지만,
그렇게 유장한 바둑으로 끌고 가는 것은
우상귀처럼 바로 몰아쳐서
급박하게 판을 몰아가려는 본래 의도를 살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갈라치는 것도 겸하고, 급박한 판세도 만들고 할 겸 해서
12의 수, 눈목자로 걸쳐 갔다.
독자들도 아시다 시피 소목 걸쳐 갈 데가 있는데,
좌하귀의 화점을 걸쳐 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짠돌이 노인은 마늘모 13으로 받는다.
날뛸 테면 날뛰어 보라는 태도다.
박소저는 관전을 하면서도 노인이 미워 죽을 지경이다.
어떻게 저리 쪼잔하게 두어 갈 수가 있단 말인가?
이 젊은 스님을 상대로 하여 말이다.
원심은 마음이 자꾸 바빠진다.
여기서 일립이전(C-11)으로 벌릴 수는 없다.
흑이 한칸으로 다가오는 수가 너무 빤히 보이지 않는가?
그래서 세칸 높게 좌변 화점으로 전개하였지만,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15의 곳 일자로 다가서니 절호점이 되어버렸다.
자, 나무꾼님! 백은 어디를 놓을까요? 숨 좀 고르시고 아래 글 읽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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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도를 보자. 백이 14처럼 일립이전하면,
흑은 15 자리 한칸으로 다가올 것인데,
백이 16으로 뛰지 않을 수 없을 때, 흑이 17로 벌리면
실리뿐만 아니라 우상 백에 대한 은근한 위협도 되니 일석이조 금상첨화다.
따라서 원심은 화점으로 전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백도 좌변을 바로 다가가지 않고, 우하귀 소목에 15로 걸치면
물론 훌륭한 한 수가 되긴 한다. 그러나
수책이나 오청원이 두더라도 16의 마늘모를 두어올 것이다.
너무 기막힌 자리가 되어 버리지 않는가?
우변 흑이 전부 3선에 늘어져서 얄팍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P-14)자리 일자로 한번 눌리기만 하면 여지없이 쪼그랑 바가지가 될 터이다.
그리 되면 좌변 17로 다가서는 게 여간 부담이 되지 않는다.
17로 다가선다면 어차피 한바탕 돌들이 얼키고 설킬 것이다.
흑백이 어울려 싸우다 보면, 우변을 걸칠 기회가 영영 안 올 수도 있는 것이다.
==================아기다리고기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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