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발얘기

[스크랩] 도자기 전쟁

더바 2006. 12. 15. 08:49
1. 임진왜란에서 정유재란이 이르는 기간 동안 왜병들은 수많은 도공과 도자기를 약탈

했습니다. 그들이 특히 눈에 불을켜고 가져간 것은 흔히 '막사발'이라 불리는

서민들의 생활도자기였습니다.


막사발은 말 그대로 흙을 뭉텅 떼어서 대충 빚어 유약통에 텀벙 담갔다가 그냥 꺼낸 사

발이며, 새것이었을때는 밥그릇이나 국그릇으로 쓰이고 낡고 손때 묻으면 막걸리잔으

로 쓰던 그릇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에 널리고 널린 흔한 물건이었습니다.


헌데,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의 도자기,식기 제작기술은

너무도 낙후되어 있었습니다. 고급 분청사기는 고사하고

조선에서는 '개나 소나 다 사용하는(?)' 막사발 조차도

일본에선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이 막사발은 일본으로 건너가 희대의 예술품 대접을 받았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예야스는 이 막사발에 일본말로 이도차

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귀한 찻잔으로 썼으며, 시간이 흘러 이중 몇점은 일본의 국보

가 돼었습니다.


2. 조선으로 출병한 일본의 다이묘(영주)들중에 조선도공을 데려와서

가마를 세우고 도자기를 특산품으로 지정해 재정적자를 메우려고 한자들이

많았습니다. 막사발조차도 귀중품 대접받던 나라이니 좀 더 다듬은

고급도자기를 만들어낼수 있다면 해당 지역의 다이묘가 떼돈 버는건

시간문제 아니겠습니까?


임진왜란 이전...그러니까 무로마치 막부시대 말기에도 특히 사카이(오사카부)의

상인들 사이에서는 와비차가 유행하여 고려다완(고려도자기의 일종)이

비싼값으로 팔렸습니다.

어쨌든 도자기 기술을 획득하여 한몫하기 위해 일본군은

조선의 도자기 기술자들을 납치해 데려가는데 아주 열심이었습니다.

현재 일본에 남아있는 야마구치현의 하기야키, 가고시마현의 사쓰마야키,

기타큐슈의 다카토리산을 경계로 한 지쿠젠의 다카토리야키와 부젠의 아가노야키등은

모두 잡혀온 조선도공들괴 그 후손들이 세운 도자기 가마터입니다.

히젠의 니베시마번에서는 '이삼평'이 아리타의 덴구골에서 이즈미산의 도석을 사용하여

백자기를 굽기 시작했습니다.(일본 최초)

그후 청화와 이로에등의 개량이 이루어져 아리타야키이름으로

일본뿐만아니라 유럽에 까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만 기반이 된 제작기술은

조선도공들이 전수해준 겁니다.

그들 후손중 대표적인 케이스가 '심수관'입니다.


일부 조선도공의 후손분들은 지금도 일본에서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습니다.
출처 : 장작가마사발
글쓴이 : 서촌 원글보기
메모 : 도자기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