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 이야기
상주시 상주읍 『상주 장터』
상주는 경북 서북부의 큰 도시입니다. 지난 달 옥산장 이야기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조선시대에도 아주 큰 도시였습니다. 상주의 남쪽 도시 김천은 금릉군이었는데 군수가 있었고, 상주의 북쪽 문경은 문경현이어서 현령이 있었지요. 그런데 상주는 워낙 커서 현재의 도지사급에 해당하는 목사가 다스리는 고을이었습니다. 행정구역도 22개 읍면이어서 아주 큰 편입니다. 그렇다보니 장도 굉장히 커서 장날에 가보면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장꾼들도 충북 사람들이 반이나 될 정도로 아주 큰 장입니다. 상주의 들은 넓기도 하여서 사벌들 청리들 옥산들 함창들 등 거의 지평선이 보일 듯한 넓은 평야가 많습니다. 정부의 통계를 보면 강원도 전체에서 연간 생산되는 쌀이 대체로 5만 1천 톤인데, 상주시에서 연간 생산되는 쌀이 15만 3천 톤이니 강원도의 꼭 세 배가 됩니다. 그만큼 들이 넓고 논이 많다는 이야기지요.
장터도 크게 넓어서 한 눈에 다 들어오지 않습니다. 5일마다 서는 재래시장이 풍성하지만 장날이 아닌 때에도 장에는 사람이 많습니다.
“곡식 있는 대로 한 홉씩 다 조요!”
“아~! 양밥 하실라고요? 우리 집에는 열 가지밖에 없는데요?”
“개얀아요, 딴 데 가서 더 사지 머.”
“자식들 결혼 있으신가 보네!”
“야, 요새 아~들 말릴 수가 있어야제!”
“그라만요, 자석 이기는 부모 본래 없어요.”
곡물상 아주머니는 검은쌀(黑米), 찹쌀, 보리쌀, 밀쌀, 기장쌀, 수수쌀, 메밀, 녹두, 현미쌀, 서리태 등 열 가지를 따로따로 비닐봉지에 담아주며 가르쳐 드립니다.
“팥하고 양대는 우리집에 없응께 딴 데 가서 사시요.”
“그래지 머. 한 집에서 다 구하기는 본래 어루와(어려워)!”
곡물상 아주머니께 무슨 양밥을 하시려는 건지 아시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뻔하지요, 머. 아들이나 딸을 시집 장가 보낼라 하는데, 어데 가서 물어보이 궁합이 안 맞다 캐서 양밥을 해가지고 막음을 할라는 거라요.”
“저 곡식들을 어떻게 하는 건데요? 산에 가서 다 뿌립니까?”
“결혼식 날이 되면 아침 일찍 한 솥에 열두 가지 곡석을 다 넣고 밥을 해요. 밥이 다 되면 결혼식장에 가서 식을 올린 다음 집으로 와서 밥솥을 들고 산으로 올라가 새들이 잘 쪼아 먹을 수 있도록 큰 바우 우에 밥을 퍼 놓고 천지신명한테 절을 하고 니리오는 거지요.”
“새들이 쪼아먹으면 궁합이 맞아 들어가는가요?”
“그기야 아무도 모르지요. 기양 옛날부터 그리 해오던 깅께 해보는 기지, 빌 다른 뜻이야 있겠어요? 새들이 콕콕 쪼아 먹으면 불길한 것들이 함께 쪼아 믹힌다고…….”
“들쥐나 다람쥐가 먹으면 어찌 돼요?”
“내도 몰라요, 바우 우에 피 놨는데, 새만 먹겠어요? 아무나 먹지.”
밤과 대추를 팔고 있는 아주머니 장꾼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하도 감동적이라 그 이야기를 그대로 옮깁니다.
――내가 밤 대추를 팔고 있는데, 추석 전 장날 어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데리고 장을 보러 나오셨지요. 시어머니는 밤과 대추를 2,000원 짜리로 한 종지씩 샀어요. 그 순간 그집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말씀드리더라고요.
“어머님, 저기 즉석두부집 앞에 사람들이 줄 섰으니 거기 가 얼른 줄 서 계세요. 줄 안서면 얼마나 기다릴지 몰라요.”
시어머니가 그리로 가시자 며느리가 저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라요.
“한 됫박짜리로 밤과 대추를 더 넣어 주세요. 얼른요.”
“왜 그래요? 지금 밤과 대추를 샀잖아요?”
“우리 시어머니께서는 많은 식구에 알뜰살림을 하시던 분이라 손이 가늘어져서 많이 사지를 못해요. 시어머니 사시는 대로 제수를 마련했다가는 한 사람에게 한 개도 안 돌아가게 돼요. 가족들이 핀잔을 하면 그때는 이미 늦죠. 그래서 시어머니 모르게 얼른 사려고 하는 거예요. 돈은 여기 더 받으세요.”
핸드백에서 돈을 더 꺼내준 며느리는 밤과 대추를 더 사 넣은 봉지를 들고 시어머니가 서 계시는 곳으로 급히 발길을 옮겨 갔어요. 시어머니 기분 안 나쁘게 제수용품을 더 사서 가져가는 며느리가 어찌나 착해 보이든지 감탄을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요새 세상에 그런 며느리 없거든요.――
아직 9월 하순인데 벌써 배추 무 알타리 등이 많이 나왔습니다. 아주머니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열무는 모종을 팔지 않느냐고…….
“열무를 왜 모종을 구해요? 씨를 뿌리면 되지.”
“새들이 하도 쪼아 먹어서 그러지요.”
“열무는 모종을 하지 말고 씨를 뿌려야 해요. 씨를 뿌리면 싹이 많이 나는데, 한번 솎아 밥 비벼먹고, 좀 있다가 또한번 솎아 밥 비벼먹고, 그 나머지를 기르면 돼요. 하지만 처음 싹이 나왔을 때 그때가 문제지요. 아무리 쫓아도 싹을 새들이 자꾸 쪼아 먹는데, 그것도 방법이 있어요. 기장쌀을 열무골에다가 좀 뿌려주면 새들이 기장쌀 쪼아 먹느라고 열무 싹을 쪼아 먹지 않게 돼요.”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저는 메밀 뿌리고 나서 얼마나 화가 나는지 약 넣은 콩을 뿌려 비둘기들을 다 잡아 죽이려고 마음먹기도 했어요.”
“비둘기들이 하도 똑똑해서 약 넣은 거 먹지도 않아요. 또 다 막지도 못해요. 그러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보세요. 열무나 미물이나 뿌린 지 사흘 뒤에는 싹이 확 솟아오르도록 저녁에 물을 듬뿍 주고 기장쌀을 뿌려두면 돼요. 아침에 새들이 와도 기장쌀 주워 먹느라고 열무 싹이나 미물 싹을 안 쪼아 먹는답니다.”
멋진 노부부가 장에 나오시기를 기다렸으나 이번 장에도 두 분은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장꾼들 말씀이 ‘얼마나 멋있는지 사람이 무공해 자체’라고 합니다. 키가 훤칠하신 노인이 한복을 입고, 등에는 쌀자루로 만든 배낭을 걸머지고 장보러 오시는데, 늘 할머니 손을 꼭 잡고 다니신답니다. 낙운면이나 낙동면에 사신다는데, 상주장 열리는 2일 7일에 여러 차례 갔지만 아직도 뵐 수가 없었습니다.
문경시 농암면 갈동에서 고랭지 배추 농사를 지으시는 아저씨는 아직 성질이 팔팔 살아 있는 분입니다. 배추 사러 오신 할머니 한 분이 말씀하시기를,
“속이 찼는지 안 찼는지 어떻게 알아? 저울에 한분 달아 봅시다.” 하셨습니다.
아저씨는 소리를 확 지르더니 곡물가게에 와서 저울을 빌려 가서는 배추를 달아 보이고 저울을 도로 가져다 놓습니다. 그리고는 그 할머니더러 사시지 말라고 합니다.
“아, 오늘 디기 재수 없네. 어른요, 속고만 살았어요? 손이 저울이라고, 손으로 들어보면 알지 그걸 저울에 달아 봐요? 우리집에서 사지 말아요. 내가 수년간 배추장사를 이 자리에서 하고 있는데 먹도 못하는 걸 팔면 당장 쫓겨나지 이 자리 지키겠어요? 딴 데 가서 사요. 어른한테는 안 팔아요. 에이 씨~! ”
다른 장꾼들이 말려서 그 할머니는 겨우 배추 두 단을 사갈 수 있었습니다. 배추값이 얼마나 좋은지 2단씩 묶어서 큰 것은 만 원이었고, 좀 작은 것은 8,000원이었습니다.
장꾼들은 새벽에 나와 장터에서 국밥을 시켜먹거나 싸온 밥을 먹습니다. 그만큼 이른 시간에 장이 선다는 이야기이고, 늦게 나오면 자리 차지도 못할 만큼 상주장은 잘 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리 한 곳이 비어 있습니다. 주위 장꾼들이 불평을 합니다.
“천막만 쳐놓고 안 나오만 우째나? 자리만 차지해놓고 안 나와도 되는 긴가?”
옆 자리 천막 장꾼이 이를 듣고 달랩니다.
“애들 학교 보내고, 신랑 출근시키고 나오다 보이 늦는기라, 오래오래 한 사람인께 기양(그냥~상주 말은 이 야 여 요 앞에서 ㄴ발음이 되지 않습니다.) 더 말하지 마라 고만!”
또 한 곳에 천막이 쳐져 있으나 주인이 없습니다. 옆 장꾼에게 물어보니 주인이 대전에서 온다고 합니다. 아까 이야기했던 배추 장수 아저씨도 상주장 점촌장 경주장을 보러 다니신다고 하는 걸 보면 교통의 발달로 인근지역만 다니던 옛날 장터와는 사뭇 다른 모습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상주장은 아주 큰 장이기 때문에 장터 바닥에 번호표가 붙어 있습니다. 시장 안쪽은 번영회 회원들의 장터이고, 넓은 통로는 상근회 70여 명, 아랫녘 노조장은 20여 명, 일반장은 70~80명, 직접 농사지어 가지고 나온 노인들 20여 명으로 이루어진답니다.
할아버지 한 분이 비닐봉지를 들고 곡물상 가게 앞을 지나가십니다. 곡물가게 아줌마는 인사를 합니다.
“할마이 구했어요?”
“아즉 못 구했지. 그기 십기(쉽게) 되나?”
“여기 장에 채이는 기 할마씬데, 그걸 못 주워요?”
“아무리 그래도 할마이가 땅에 떨어진 것도 아니고 어떻게 주워?”
“공을 디리야 줍지요.”
“고기 꾸 주고 술 받아 주마 되까?”
“그거 가주고 돼요? 힘을 쓸 수 있어야지.”
“힘이야 내만큼 쓰는 사람 어닜노?”
“겉으로 보기야 그래 비지만 남자들은 겉보기하고는 다르다 카던데~!”
“내 참 빌 껄 다 따지네. 내 볼일 보러 가야겠네.”
걸껄 웃으시며 저리로 걸어가신다. 몇 년 전에 상처하신 뒤로 유난히 힘들어 하시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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