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 이야기
봉화군 춘양면 『춘양 장터』
환상선 눈꽃열차가 달리는 영동선(영주-동해) 선로는 산악지대를 가로지르기 때문에 좀 구불구불 달리지만, 그래도 열차 선로인지라 그렇게 구부러져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봉화군 법전역과 녹동역 사이에 있는 ‘춘양역’ 근처의 선로는 오메가 형(Ω)으로 구부러져 있습니다. 이 선로 부설시 춘양 사람들이 끝까지 버틴 결과로 이렇게 구부러진 것입니다. 선로가 이렇게 구부러지지 않았다면 춘양 사람들은 오 리 이상을 걸어 나와야 영동선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억지를 부린 것인데, 이 일 때문에 「억지춘양」이란 말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흔히 소설 ‘춘향전’에서 변사또가 억지로 춘향을 수청 들게 했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하여「억지 춘향」이라고들 알고 있지만 그 말은 틀린 말이고, 열차 선로를 구부러지게 할 만큼 춘양 사람들의 고집이 대단하다는 뜻에서 생긴 말이기 때문에 「억지춘양」이 맞는 말입니다.
또 「춘양목」이란 소나무가 있습니다. 소나무로 집을 지어 오래 되면 기둥과 서까래가 검게 퇴색되지만 백 년이 지나더라도 그 기둥을 새로 대패질하면 다시 새뜻한 본래의 소나무 색깔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춘양목’은 전국 최고의 소나무라는 뜻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공든 탑이 무너지랴!’라는 속담처럼 2010년에 춘양공소는 본당으로 승격하여 교구민들의 찬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재래시장 이용의 편의를 위하여 소비자들이 비 맞지 않고 장을 볼 수 있게 높다란 지붕이 길게 뻗친 장길을 들어서니, 중년의 부부 채소장수가 보입니다. 지나가던 아줌마 묻습니다.
“미나리 한 단에 얼마이껴?”
“삼천 원!”
“정구지(부추)는?”
“이천 오백 원!, 시금치는 마이 니맀니이더(내렸어요). 사천 원씩 하던 기(게) 삼천 원!”
달래도 한 상자 가져다 놓고 그릇에 담습니다. 춘양신협 직원 한분은 출근하자말자 조그만 손수레에 신나는 음악과 함께 천 원짜리 잔돈을 가지고 다니면서 상인들에게 교환해 줍니다. 할인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냥 봉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 한 분이 바퀴 있는 장보기 손수레를 끌고 오십니다. 나물을 풀어 헤치는데 보니 당파 두 묶음, 무쳐먹는 열무시래기 한 보퉁이, 삶아먹는 큰무청시래기 한 보퉁이, 굵기도 하고 잘기도 한 호두 한 되, 능이버섯 말린 것 한 봉지 등이 쏟아집니다.
“할매! 여든 넘었니껴?”
“여덟이~더.” 여든 여덟이라는 뜻입니다.
“없어요, 산에 있지.”
“돌아가신 지 오래 돼씸니껴?”
“야(예)! 이십 삼 년 됐니이더! 갈 때 날(나를) 디로(데리고) 가마(가면) 좋을 낀데, 혼자 살라카이 죽겠니이더. 그때 디로 갔으마 이 고상 안할 낀데.”
“이 도라지 혼자 다 까서 가져오신니껴?”
“야! 심심하이꺼내~, 잠은 안 오고…….”
“자녀들 있는데 와 돌아가시마 좋다 하니껴?”
“아이고, 있어 봤자 지들 사니이라고(사느라고) 정신없는데, 낼 돌볼 여가 있니껴? 사는 기 그키 다 힘들다 카이!” 하시면서 계속 파를 다듬고 계십니다.
“힘드는데 그거 머할라꼬 다듬어요? 기냥 팔지!”
“쪼매 더 받을라꼬.” 하시며 웃으십니다.
저 편에 각종 공구들을 늘어놓고 파시는 할아버지가 계십니다. 일흔이라고 하십니다. 어떤 아저씨가 톱 씰어 놓은 것을 찾으러 왔습니다.
“잘 씰어(쓸어) 났니이껴?”
“저번에도 씰어 놓고 또 묻나?” 먼저 번에 만족했으니 또 온 것 아니냐는 뜻이 함축돼 있습니다.
아주머니 한 분이 전지가위를 사면서 깎아 달라고 하십니다. 대답이 걸작입니다.
“너무 싸기 해주마 담부터 미안해서 안 와! 내 키가 아무리 커도 안 와!” 깎아주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다시 나물 파는 할머니 곁으로 갔습니다. 다른 할머니 한 분이 함께 전을 펼치고 앉아 계십니다. 냉이를 세 봉지나 펼쳐 놓고, 시금치 부추 깻잎도 있습니다. 슈퍼에 가서 두유 세 병을 사가지고 와서 깔개를 좀 내어달라 해서는 두 할머니와 함께 앉았습니다. 지나가는 손님들이 힐끗 쳐다보고는 그냥 갑니다. 할머니 두 분 대신에 제가 외쳤습니다.
“시래기 사이소! 맛이 아주 좋니이더! 추자도 사이소! 나새이가 양이 많니이더!” 했더니, 노할머니께서 웃으시면서,
“저 아수우마 팔리제, 왼다고 팔리능기 아이라!” 하십니다. 살 사람이 아쉬워야 사는 것이지, 큰 소리로 외친다고 팔리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도라지는 한 봉지에 이천 원인데, 두 봉지 사면 삼천 원에 해 줍니다. 능이는 만 오천 원 불렀는데, 손님 노부부 중 할아버지가 탐이 나셨는지 만 원만 주고 가져가 버리십니다. 냉이를 사가시는 아주머니에게 말하십니다.
“낭이는 찰밥에 최고라! 2월 넘어가면 맛없어. 보름 전 낭이가 최고지.”
옆 할머니가 가지고 나온 강냉이 알을 천 원 깎아 사천 원에 사서 뻥튀기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이동식 뻥튀기 아저씨에게로 먼저 갔으나 거기는 줄을 너무 길게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해동떡방앗간’이라는 국제적 상호가 번쩍이는 뻥튀기 집에 갔는데, 기계도 만만치 않아 보였습니다. 석유를 넣은 가압 가스통에서 나온 연료의 관이 불길 속을 가로질러 다시 노즐로 공급되는 장치였는데, 문경장에서 보았던 그 ‘장작 뻥튀기’의 17분 간격보다 7분이나 단축되는 기계였습니다. 그리고 뻥튀기집 사장님은 목에 호루라기를 걸고 계셨습니다. 속으로 의아했으나 10분 뒤에 연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기계가 좋아서 고압으로 뻥튀기를 하기 때문에 소리가 너무 커서 기계를 여는 순간 길가는 사람들이 놀랄까봐 호루라기를 한번 불고는 레버를 제끼는 것이었습니다.
사가지고 가서 튀긴 강냉이 알이 이미 튀겨 놓은 다른 강냉이 알보다 낟알이 잘다고 푸념을 하자 아저씨는 설명을 해 주십니다.
“밭에서 덜 여문 걸 떨어가지고 크게 튀가지지 않는 거요. 잘못 산 거지.”
아침 식사를 7시에 하고 출발했기 때문인지 12시가 넘자 배가 너무 고팠습니다. 국화빵 아줌마가 배달된 식사를 하고 계셨는데 반찬이 좋아 보여 어느 식당에서 시킨 밥이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코끼리 식당’이라고 했습니다. 그 식당으로 가서 들어가려니까 주인아줌마가 몇 사람이냐고 묻습니다. 혼자라고 했더니, 너무 바쁘고 자리가 없으니 12시 40분 넘거든 오라고 합니다. 그냥 돌아 나오려는데 동아건설 마크를 단 회색제복을 입은 아저씨가 자기 옆으로 오라고 합니다. 세 분이서 잡숫고 계셨는데 자리가 하나 남으니 오라는 겁니다. 반찬도 충분한 것 같아 밥과 국만 받아 말아 먹었습니다. 예상대로 맛이 좋은 집이었습니다. 식사 도중 건설사 아저씨께 물어 보았습니다.
“어떤 걸 건설하고 계십니까?”
“한전에서 발주한 철탑 공사 하고 있습니다.”
“선로는 어떻게 되는데요?”
“울진에서 봉화까지 연결합니다.”
“봉화지역 전기가 모자라는 모양이죠?”
“그런 셈이죠. 기존 선로의 송전으로는 너무 모자라서 새로 눌린답니다. 봉화군 생활수준도 많이 달라진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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