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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성계와 글자점 이야기

더바 2017. 3. 24. 07:03

<무학대사와 이성계-글자점 이야기>

 

이성계는 놀라 잠을 깼다.

자기가 산에 나무를 하러 갔는데,

큰 서까래 세 개를 지고 내려오는데,

너무 힘들어 산을 다 내려 와 놓고는 그만 지게를 벗어버린 것이다.

'이 꿈의 뜻을 좀 알아보긴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나?'하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당시의 유명한 스님인 무학대사를 찾아가기로 하였다.

 

무학대사가 기거하는 암자에 올라가니 벌써 두 사람이 이미 와 있었다.

대사가 들어와도 된다고 하여 이성계는 순서를 기다리며

다른 사람의 점치는 모습을 구경하기로 하였다.

 

첫째 손님은 어떤 아줌마였다. 대사가 물었다.

"어쩐 일로 오시었소?"

"대사님! 저의 남편이 장사를 떠난 지 삼년이 다 되었는데, 소식이 없습니다."

"그럼 이 책에서 아무 글자나 한 자 짚어 보시구려."

하며 한자 투성이의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여자는 아무리 책을 들여다 봐도 아는 글자가 한 일(一)자밖에 없어 그걸 짚었다.

"당신 남편은 죽었소."

"뭐요? 그럴 리가... 대사님, 왜 그래요?

"한 일(一)자는 날 생(生) 자의 끝이요, 죽을 사(死) 자의 처음이니, 살아도 다 살았고, 죽었으면 이미 오래 되었소."

 

"제가 무식해보이니까 대사님은 말씀을 함부로 막 하시는군요. 한 글자만 더해 봅시다."

"허허허, 그러시구려..."

 

이 여자는 이번에는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아주 어려운 글자를 짚었다.

약 약(藥)자였다.

 

"어허 거참, 틀림없구려. 나무 판자(木) 위에 백골(白)이 누웠고, 옆은 실(絲)로 꽁꽁 묶었으며, 위에는 풀(艸)이 났으니, 정말 죽은 거요. 이젠 내 말을 믿고 가보시오."

여자는 울면서 암자를 내려갔다.

 

다음 차례는 고상한 옷을 입고 있는 부티 나는 장년이었다.

"대사님 저도 한 번 글자점을 쳐 주시지요."

"그럽시다. 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

이 사내는 그래도 글자를 좀 아는지, 책을 들추더니 재산을 뜻하는 밭 전(田)을 짚었다.

 

"당신은 거지가 될 팔자이니 40세가 넘었으면, 이미 거지가 되었을 것이요, 40세가 안 되었다면 앞으로 거지가 되겠소."

"왜 그렇습니까? 저한테도 설명을 좀 해 주세요."

"입(口)에 거미줄(十)을 쳤으니 말하면 무얼 하겠소!"

"아까 그 아줌마도 한 글자 더 해 주셨으니 저도 한 자만 더 짚게 해주세요."

"허, 참! 그러시오. 그럼."

이 사나이는 물을 문(問)을 짚은 것이다.

 

"거 보시오. 남의 집 대문 앞에 밥 좀 달라고 입을 딱 벌리고 섰으니, 거지가 아니고 무엇이오?"

"참 내~ 그 중은 못 속이겠네."하며 입고 있던 좋은 도포를 확 벗어 던지고 가는 것을 보니까 정말 거지 차림이었다.

 

이제는 이성계의 차례였다.

해몽을 부탁하려고 왔지만,

남들이 글자 점치는 걸 보니 자신도 그러고 싶었다.

"대사님, 저도 글자점을 치고 싶습니다."

"그러면 짚어 보시오."

 

이성계는 속으로 '이놈의 중아 욕 좀 봐라.'면서 그 사나이가 짚었던 밭 전(田)을 짚었다.

그것을 보더니 무학대사는 껄껄거리며 한참을 웃고는,

 

"젊은 양반! 그렇게 오기로 사는 거 아니오. 하지만 이미 짚었으니, 풀이를 해 드리리다. 글자를 보시오, 지금 다른 옷을 입고 있지만 양쪽의 옷을 벗기고 보면 임금 왕(王)만 남는구려. 나중에 왕이 될 터이니 그때 나를 새로 찾아오시오."

"믿을 수 없습니다. 대사님, 그 사람들도 두 글자씩 짚었으니 저도 그렇게 해주세요."

"허허, 못 믿는구려. 그럼 그렇게 해보세요."

 

이성계는 또다시 용렬한 마음이 솟아올라 물을 문(問)을 짚었다.

"허허 용기가 대단하시구려. 하지만 결과는 꼭 같은 거요."하며 물을 문(問)자의 오른쪽과 왼쪽을 번갈아 가리면서,

"이쪽으로 봐도 임금 군(君)자요, 저쪽으로 봐도 임금 군(君)잘세. 허허허."하며 웃었다.

 

그제서야 이성계는 대사의 신통력이 글자를 보고 점을 치는 수준이 아니었음을 알고는 사실대로 말을 했다.

"제가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큰 서까래를 지고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산을 다 내려온 후에 너무 무거워 잠시 지게를 벗는다는 것이 고만 지게를 넘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오호 그랬구먼... 당신은 틀림없이 임금이 될 것이요. 그러나, 지게를 지고 집까지 오지를 못했으니, 당신 생명이 끝날 때까지 임금 자리에 있지는 못할 것이오." 했다.

 

과연 그 말대로 이성계는 아들들에게 밀려나 상왕과 태상왕 시절을 보냈던 것이다.

 

한편 무학대사는 늘 절에서 바둑을 두며 지냈다.

그러구러 세월이 흘러, 이성계가 임금이 되고, 무학대사를 찾아왔다.

"대사님! 저를 알아보시겠습니까?"

무학대사는 일어나서 사배(四拜)를 드리고, 담소하다가 함께 산을 내려왔다.

 

무학대사는 절에서 살면서도

늘 고려 초에 왕건을 가르쳤던 도선국사가 점지해 놓았다는 궁궐터가 어디인지 몰라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계룡산 아래와

지금의 서울.

이 두 곳을 마음에 두고 터를 닦았는데,

아무래도 계룡산 아래가 더 나은 듯이 보였다.

 

거기다가 열심히 터를 닦으라고 해놓고 또다시 서울을 다녀오던 차에

계룡산 근처의 어느 밭에서 소에다 멍에를 메워 밭을 갈고 있는 노인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노인이 밭을 갈며 한다는 소리가,

"이랴 낄낄! 이 무학처럼 미련한 소야! 왜 이리 말을 안 듣나?"

 

이 말을 들은 무학대사는 속으로 은근히 부아가 났다.

자기가 무학대사 아닌 것처럼,

"여보시오, 노인장! 무학이란 중이 그렇게 미련한 중이옵니까?" 하고 물었다.

"아, 이씨 터도 아닌 곳에다 이씨 궁궐터를 닦고 있으니 그게 미련 아니고 뭐야?"

 

무학대사는 이마를 탁 쳤다.

그러고 다시 밭을 보니,

노인도 없고, 소도 없었다.

'옳거니, 어느 신선이 내게 여기가 도읍 터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려고 현신한 것이구나.'라고 생각하고는

즉시 일을 멈추게 하고 작업장을 서울로 옮겼다.

 

서울로 간 무학대사는 더욱 열심히 터를 닦았다.

그런데, 며칠 뒤 거기 땅속에서는 큰 비석이 하나 나왔다.

그 비석에는 글자가 3자 씌어져 있었는데,

왕십리(往十里;십리를 더 가라!)였다.

그래서 무학대사는 다시 십리를 더 가서 지금의 경복궁 자리를 닦아 궁궐을 지었던 것이다.

 

이 비석은 저 위에 이야기한 도선국사(태조왕건 드라마에 나오는 고승대덕!)가 묻어놓은 것인데,

'몇 백 년 뒤에 모자라는 중이 여기를 도읍터라고 닦을 터인데, 여기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 비석을 묻어 놓는다.'

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왕십리에 사는 노인들에게 전해져 오는 이야기이다.

 

그때부터 '왕십리'란 마을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지금의 서울 왕십리는 너무 커져 상왕십리, 하왕십리로 나누어져 있다.

 

<전설따라 삼천리풍 시로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함미더.>

출처 : 바람재들꽃
글쓴이 : 단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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