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둘쨋날 이하의 성도 여행기를 올립니다.
더바, 쓰촨 여행에서 대지진을 공부하다
성도공항에 밤11시 반에 도착하여 가방 찾고 가이드 찾고 화장실 간 교수님 찾고,
가이드 따라 버스 타고 30분 걸려 호텔 도착,
풀고 벗고 누고 닦고 씻고 여가 없어 안 바르고 누우니 새날 0시 반입니다.
가이드가 버스에서 한 말이 주르륵 떠오릅니다.
“성도는 일 년 내내 영상의 기온이다. 여름은 디따 더워서 벼농사가 잘 된다. 겨울에도 영상의 기온이 계속되므로 2모작은 물론이고 3모작도 더러 한다. 따라서 여기 사람들은 난방을 모른다. 관우는 점잖아서 입고 살았지만 씅질 불같은 장비는 늘 벗고 살았다. 호텔에 들어가 침대에 누우면 썰렁할 것이다. 방을 뎁힐 수 있는 건 온풍기뿐인데 중앙집중식이라 고층은 뜨신 바람이 나와도 저층은 찬바람 나올 가능성 높다. 빈관(宾馆=HOTEL)은 8층인데 우리 팀은 전부 3층(뜨신 바람 나오기 여렵다는 말이죠, 비벼머글!)에 주무시게 된다. 기계가 난방과 냉방을 겸한 기계이니 잘 가늠하여 돌리시되 잘못 돌리다 보면 밤새도록 찬바람 맞게 될 것이니 알아서 기시오.”
평소 저희는 홍맥이라고 하는 붉은 맥반석 돌침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돌판대기 두 쪽을 마눌은 추위를 많이 타서 36~7도로 하고 자고,
저는 여름에는 20도지만 겨읅에는 33도로 잡니다.
그런데 이누무 주점인지 빈관인지 여기 침대는 아무런 난방장치가 없어
내 체온을 잃지 않게 잘 감싸고 자야 되는 그런 영국식 침대입니다.
그래도 영국은 벽난로가 있더라구요. 장작 아닌, 개스로 불지피는 가짜였지만......
둘이 머리를 맞대고 난방기를 들여다보며 난방 버턴을 겨우 찾아 디따 틀었습니다.
난방기구를 가장 쎄게 틀긴 틀었는데 소리만 요란하지 바람은 찬바람이 납니다.
아마 7~8층에 손님이 많이 들었겠죠.
(나중에 알았지만 우리 팀이 가장 높은 층에 들었더라구요. 비수기라 호텔이 텅텅 빈 상태였던 거죠.)
온도가 문제가 아니라 고(高) 데시벨을 견딜 수가 없어서 끄고 잤습니다.
좀 추버도 조용한 기 낫더라구요. 잠이 들면서도 아침이 걱정되었습니다.
6시에 모닝콜을 넣는답니다. 7시에 식사를 하고, 8시에 버스가 출발한답니다.
먼 거리를 달려야 관광지에 도착하므로 느지막이 가면 암 것도 못 보고 점심 먹어야 한답니다.
백수 된 지 몇 년 지나다 보니 규칙적이거나 시간에 맞추어 하는 일이 대단히 어려분 일로 빈해 버렸습니다. 마눌이 저를 완존 힙합(hip hop)형 사육을 하고 있기에 금세 길들여져 저도 그에 맞는 스웨그(Swag)를 익히게 되었으니, 이런 시간대에 이런 엄청난 일을 감당해 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마구 엄습합니다.
한 달 전, 후난성 정주시에 가서 자고 머물며 두 시간 걸려 숭산 소림사 갔었고,
이튿날 또 두 시간 걸려 낙양 가서 용문석굴 백마사 가보았고,
그 담날 역시 두 시간 걸려 포청천 살던 개봉근처 갔었고,
다음날도 두 시간 달려 황하 유람지 갔었던 기억을 돌이켜 보니
가이드 말이 무리는 아니다 싶어 끽소리 못하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자꾸 걱정이 되어 점점 정신이 말똥가리 됩니다.
흥부 같으면 비몽사몽간에 박을 쪼개다가 떵물이라도 뒤집어쓰고
복권 당첨이라도 기다려 보겠지만, 저는 그거 안 사거든요.
여행 둘째 날이나, 관광으론 첫날. 6시에 일어나 7시에 밥 먹고 8시에 출발했습니다.
오늘 가는 곳은 방통사(龐統祠), 촉한의 책사이며 제갈량의 친구이고, 낙봉파에서 36세로 전사한 천재의 사당입니다. 별호 ‘봉추(鳳雛)’는 봉황의 새끼라는 뜻. 처음 유비를 만났을 때, 제갈량의 소개장을 안 보여주고 얼굴이 못나 유비 눈에 안 들었고, 따라서 시골 현령으로 발령이 났었죠. 사당 앞에는 방통의 상과 유비가 빌려준 백마(白馬)상이 함께 세워져 있습니다. 촉을 정벌하러 출발하는데, 방통의 말이 요란하게 울며 방통을 떨어뜨리자 유비가 자신의 백마를 빌려줘 타고 가게 하였기에, 촉군은 백마 탄 인물이 유비라고 생각하여 집중 사격을 하게 되고, 방통은 화살을 맞아 고슴도치처럼 되어 죽었답니다. 공격의 선봉에서 전사한 만큼 촉한의 충신이죠. 1800여년 전의 전쟁 씬이 머리에 생생히 떠올라 감회가 깊었습니다.
저는 가이드 설명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백마에 탄 방통이 화살을 수북이 맞고 죽었는데 백마는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백마는 안 죽었답니다.
어째서일까요?
가이드 말이 그 다음에도 유비가 백마를 타고 다녔답니다.
말도 안 돼. 메두사가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페가수스도 아니고, 테티스가 아킬레우스 대신 백마를 낳아 저승의 강에 담갔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어떠코롬 그 많은 화살이 비켜 갔단 말입니까? 동상이 된 말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방통사 앞길은 당시 군량을 실어 나르던 마차의 쇠바퀴 자국이 돌포장 길에 분명히 남아 있어서 마치 폼페이 시의 길거리 같았습니다. 단 폼페이는 두 줄기 바퀴자국이었는데 여기는 외바퀴 자국입니다. 함께 유적을 둘러보고 있는 여섯 분의 신선 중 지진학 박사님이 삼국지 내용에 가장 정통하셨고, 무협지도 가장 많이 읽으신 분이었습니다. 이분은 방통의 죽음을 ‘유비가 파촉을 치는데 주저하자, 방통이 자신의 죽음을 일부러 꾸며 주군(유비)의 파촉 정벌 의지를 제고하기 위함’이라는 방통의 ‘위장전사설’까지도 알고 계시는 분이었습니다. 이 교수님의 목소리는 지진의 울림처럼 파장이 있었는데, 이 목소리로 설명을 들을 제면 현장감이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이때 갑자기 마눌(지리과 출신)이 이분(지진학자)을 보고 물었습니다.
“교수님! 쓰촨 지진 때 사람들 많이 죽었죠?” 뜬금없습니다. 허나 대답은 상세!
“아, 예! 2008년 5월에 강도 8.0의 지진이 났었죠. 쓰촨성 서북쪽 2백리 정도에서 났는데, 쓰촨 전체가 흔들렸고, 가까운 이웃 성에도 피해가 있었죠. 10분간 흔들릴 때마다 10만 명씩 죽었는데, 40분간 흔들렸습니다. (좀 의아해 인터넷에 찾아보니 7만 명이 사망했고, 40만 명이 다쳤다고 되어 있습니다. 지진 전공이시니 박사님을 믿을까효?) 우리나라 인구만큼의 사람들이 재산 피해를 봤지요. 쓰촨 인구가 9천만이니 거의 반이 피해를 입은 거죠.”
오잉 8.0이라고라? 경주처럼 5,8이 아니고? 강도 1 차이가 피해 30배 차이라는데...... 이분 목소리로 지진 설명을 들으면 정말 더 쩝니다. 숨가쁘게 말씀하시고 현장을 보신 것처럼 하시니까요.
“우리 오늘 가는 곳은 괜찮을까요?”
“하하하 100% 안전하다는 말씀은 못 드리지만, 괜찮을 겁니다. 지진이란 게 반드시 사전 징후가 있어서 쥐들이 떼를 지어 움직인다든지 개미가 무리지어 이동한다든지 그런 게 있는데, 요즘 학계에 쓰촨 부근 지진계가 작동한다는 내용이 보고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국제적으로 학자들끼리 서로 정보를 나누곤 하지요. 그렇게 겁나세요?”
“예, 저는 동생이 포항에 살고 있는데, 가까운 경주에서 자꾸 지진이 난다 하니 그게 걱정이 많이 됩니다.”
“그렇겠군요. 허나 갑자기 닥치는 천재지변은 운명이죠!”
오잉? 운명이라고라? 여기서 겁 많은 저는 디따 쫄았습니다. 운명이라고라??? 재수 없음이지 그게 워찌 운명이라고라?
방통사는 여행 중 처음 가보는 곳이라 8명 모두 약간 진지함을 유지하며 가이드 설명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때 6분 중 가장 머리칼이 하얀(99.5% 백발, 목뒤 머리칼 경계선 몇 올만 검은 머리) 교수님이 주로 사진을 찍으셨는데, 아주 순진한 분이셨습니다.
일곱 살이나 아래인 더바에게 카메라 자랑을 마구 하시더라구요.
더바 : 아이쿠, 이 카라멜 오두막(캐논 5D Mark 시리즈)이군요! 렌즈도 24~70 이구요.
암석생성학 : 다른 걸 가지구 출장 다니면서 찍어보니 션찮아요. 천만 원 들여 마련했죠. 본체와 렌즈 둘, 이렇게요. 렌즈가 가방 안에 하나 더 있어요. 70~200 짜리!
더바 : 저는 80~200을 가지고 있는데, 별로 쓸 데가 없더라구요. 500mm는 돼야!
암석생성학 : 2백만 원 가지고는 갖추지 못하죠. (‘2백'만 들리셨던 모양)
더바 : 아뇨, 저~ 렌즈 말입니다. 500미리 짜리는 돼야 좀 당겨서 찍을 게...
암석생성학 : 아~! 본체 말이로군요. 오백만 원 줘야 괜찮죠.(오잉? 이게 뭥미?)
나중에 기차(汽車=巴士=Bus) 타고 다른 곳으로 가려는 중 미리 올라타신 분석학 교수님이 제게 다가 오시더니, 살짝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저 친구 귀가 어두워서 못 알아듣는 일이 많아요. 상당히 큰 소리로 해야 바른 대답 들을 수 있답니다.
아하! 그러셨구나. 동문서답 하시는 까닭을 알고 나니 모든 게 이해됩니다. 이래서 사람은 알아야 합니다. 상대를 모르면 오해하죠. 왜 그러는지 알고 나면 잘 이해됩니다.
방통사 입구에 방통의 상이 앉아 있습니다. 울긋불긋 칠을 많이 해놓았습니다.
암석생성학 : “방통이라구? 밥통 같이 생겼는데? 왜 저리 못 생겼어?” 하십니다.
암석분석학 : “자네 온다고 화내고 있는 거여! 안 보여?” 서로 동갑이신 듯.
암석생성학 : “나 오는 거 어떻게 알았대?” 일부러 이러시는 줄 알았죠. 유머하신다고...
암석분석학 : “광주 시내 다 소문내고 다녔잖아!” 뭔 소식 들으셨나 봅니다.
암석생성학 : “마누라에게만 얘기했는데?” 동심이시고 아주 진지하십니다.
암석분석학 : “자네 부인이 제1방송이라는 거 아직 몰랐어?” 오잉? 이런 농담을?
암석생성학 : “그걸 왜 여기서 말해? 젊은 부부도 계시는데!” 저는 못 들은 척......
======= 덕분에 저희 부부는 속으로 킥킥 대며 젊은 부부가 되었습니다.
암석분석학 : “그러면 어디서 말해? 광주에서 해?” 웃음 참느라 혼났습니다.
======= 그분들께서는 이때 폭소를 터뜨리셨지만, 저희 부부는 연세가 모자라 이런 때 못들은 척해야 하는 거라고 선친께 배웠습니당!
물리학과 지진학전공 교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찌질학과 이 두 분이 평소에도 이리 찌질한 농담을 잘 주고받으신답니다.
사진은 방통의 조각(동상 아니어서 재료 모름)이며, 말은 유비가 빌려준 백마입니다. 말 궁둥이에 종기가 났는지 붉은 천으로 덮어 놓았기에 궁디이는 자르고 찍었습니다. 귀부인들께서도 사진 박으실 때, 기미나 잡티 파운데이션으로 가리고 박는다면서요? 아니면 암말인지 숫말인지 모르게 하려고 그런 것 같기도 해서요.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에는 이 말이 암컷인지 수컷인지 안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고추를 달 수도 안 달 수도 없는 거겠죠.
이럴 때는 폼 나는 홍포로 가려 놓는게 상책이죠. 그걸 등춰보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방통 이야기는 너무도 잘 아시는 내용이어서 생략합니다. 들은 바로는 낙봉파에서의 비명횡사가 방통 자신이 제갈량급이라는 걸 보여주려다 무리하게 공격한 결과라 하기도 한답니다.
점심을 먹기 위하여 이 근처 식당으로 가는 도증이었습니다. 총무를 맡으신 가장 어리신 교수님이 가이드를 부릅니다.
“정따꺼! 우리 옵션 관광이 뭐뭐 계약되어 있죠?”
“본래 들어 있던 건 세 가진데, 가이드/기사 경비 50불은 어딜 가나 있는 것이고요, 60분 전신마싸지 30불, 변검쇼 30불, 사천약선요리 30불 등 140불이고요, 가이드가 추천하는 것 두 가지가 사천식 샤브샤브 30불, 90분전신마싸지 30불인데 개인 선택입니다. 이걸 합하면 200불이 되죠.”
“그래 정따꺼가 추천하는 거 우리 다 하지 뭐. 여러분 좋으시죠? 따로 문경에서 오신 두 분도 찬성하십니까?” 이구동성으로 ‘좋습니다!’ 하니, 정가이드가 말하길.....
“아이구, 고맙습니다. 돈 이야기를 언제 하나 눈치만 보고 있었는데, 이렇게 화끈하게 모든 걸 일임해 주시니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저도 열심히 해서 보답하겠습니다.”
이리 하야 우리는 남들도 다 부러버 하는 여행자와 가이드 혼연일체 팀을 만들기에 성공하였습니다. 화끈한 교수님 덕분에 가이드에게 극진한 대우 받으며 여행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식당으로 들어가서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총무 교수님이 ‘정따꺼’ 하시며 불렀습니다. 가이드도 알아듣고 옵니다.
“우리가 여행 첫날이고 초면에 어색함도 있고 하여 술을 한 잔 하며 문경 손님과 서로 인사도 나누고 싶은데, 너무 비싼 거 말고 8명이 나누어 마실만한 걸로 한 병 주문해 주쇼”
“알겠습니다. 가이드의 고민을 한방에 날려주셨으니 제가 한 병 사죠.”
이래서 매 끼니 때마다 알콜 40도 내지 63도짜리 빼갈이 원탁에 올라오는 겁니다. 다행히 용량은 늘 똑같은 500mm 1병이었습니다. 단 한 번도 술을 거르지 않고 잡숫는 이 정정한 칠십 노인들이 정말 신선 아니고 누구겠습니까?
그 중에서도 지진학 박사님이 가장 애주가셨습니다. 자주 중국 여행을 하다보니 빼갈을 먹을 때마다 중국 사람들이 주는 술잔은 눈꼽단지만한 게 몇 방울 들어가지도 않고 하여 술잔을 늘 소지하고 다니신다면서 우리가 먹는 술잔의 서너 배가 들어가는 하얀색 자기(瓷器) 잔을 주머니에서 꺼내시는 겁니다. 매우 건강하셔서 얼굴빛이 관우의 얼굴처럼 붉은 대춧빛이었습니다.
오후는 소화고성에서 맴을 돌았습니다. 정따꺼가 자유시간을 주며 성 안을 맘대로 돌아보시라고 하여섭니다. 리장고성에 비하면 아주 소규모였지만 인사동보다는 훨씬 규모가 컸습니다. 아기자기한 많은 물건들을 쟁여 놓고 파는데, 특히 돼지고기 같은 육류를 훈제로 말려서 팔고 있었습니다. 캐리어를 못 가지고 간 덕분에 이런 육포 종류를 안 살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요즘 장사하는 거리와 안하는 거리를 담아봤습니다.
시즌이 아니라서 관광객이 적어 이렇게 노는 가게가 많았습니다.
3일째, 오전은 검문관을 갔습니다. 제갈량 사후 강유라는 장수가 3만의 군대로 위나라의 13만 대군을 막아낸 곳이라서 엄청 험준합니다. 정말 아주 적은 군사로도 대군을 막아낼 것 같은 좁은 협곡에 세워진 관문이었습니다.
오후에는 장비가 시골 현령으로 발령이 나자 성도 가는 길을 잊지 않기 위해 측백나무를 심어 놓은 ‘취운랑’을 갔습니다. 정말 1800년 전에 심은 것 같은 고목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나무마다 특징에 맞는 이름을 붙여 무슨 의미를 부여하기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취향이 잘 나타난 곳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저녁은 두부로 360가지 요리를 만든다고 하는 검문관 두부요리를 먹었습니다.
호텔은 온천수영장이 있는 천사(天賜) 리조트였습니다. 수영복 꼭 필요. 저희는 ㅇ나갔습니다. 마눌이 첨 보는 분들이랑 어더렇게 수영복 차림으로 만날까보냐며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4~5일째, 성도로 다시 돌아와 시내 투어를 했습니다. 넓고도 좁은 길이 연결되는 관착항자, 두보 초당, 무후사, 사천박물관 등을 보았습니다.
너무 지쳐 이렇게 간단히 끝내는 것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