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얘기2

새재 전설 시리즈~2, 제1화

더바 2015. 11. 20. 12:36

새재 전설 Series~2

(기보는 빌린 것이고, 이야기는 재미를 위한 Fiction 이오니 사실(史實)과 다릅니다.^^)

 

1보 서로 밀리지 않으려는 기 싸움

 

경빈은 상주에서 살던 처녀 시절에 학발노인과 주지스님의 내기 바둑에 개입했었고, 주지스님의 원한을 갚기 위해 원심스님을 도와 학발노인을 이기게 한 경력이 있었던 만큼, 경빈이 되어 조정대신들을 자기 처소로 불러 호통을 칠만큼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게 된 뒤에도 바둑에 대한 관심은 늘 가지고 있었다.

 

새재 전설 Series~1에서 원심스님은 전생통이 터져 자기가 곧 신임 사또이자 머슴이며 문둥이이고 거렁뱅이였으며, 학발노인이 전생에서는 자신의 사형이자 그 절의 수행스님이며 화두(話頭) 놀이를 하다가 방장스님으로부터 쫓겨난 신세라는 것을 꽃님들은 알고 있다.

 

그런데 중종은 반정으로 150691일 임금 자리에 올랐으므로 명나라 황제에게 조공을 바치고 인정을 받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래서 등극 한 달만인 1010일 쌍십절에 지중추부사 한순을 중국에 보내 인삼과 금붙이로 하정(賀政)하였다. 이에 대한 답방이 연말에 오게 되었는데, 중국사신 측은 압록강을 건너자말자 의주에서 파발을 보내어 조공품목으로 말 2천 필을 준비하라는 메시지를 보내 왔다. 되돌아가는 길에 말을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새로 등극한 임금으로서나 반정에 성공한 공신들 입장에서는 거절할 방법이 없는 주문이었다.

 

조정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처음에는 울분을 토하다가 일단 준비해 두어야 한다는 의견, 제주목사에게 이야기 들은 적 있다며 망아지까지 다 합해도 2천 필은 무리라는 의견, 명나라 조정에서 이런 조공을 원하지 않았는데 사신이 짐짓 거드름을 피우고 있을 것이라는 의견, 학식이 높은 선비들을 불러 모아 중국사신과 학문 토론을 하여 기세를 꺾어보자는 의견, 도착하면 일단 환대로 마음을 누그러뜨린 뒤 500필로 흥정을 해보자는 의견 등등이 나왔으나 소국으로서 대국을 이겨내는 것은 무리라는 분위기가 중론이었다. 암담한 조정 분위기! 결국 사정을 해서 조공을 깎아야 한다는 소극적인 안이 중론으로 거의 확정되었다.

 

이때 우리나라에 오는 중국사신이 바둑 고수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실록을 찾아보아도 이름이 나오지 않으니 이하 중국사신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사신을 접대하는 데는 술과 안주 미녀가 필요한 터였지만, 이번 경우는 바둑을 잘 두는 고수가 꼭 필요한 일이었다. 일등공신 박원종의 양녀이기에 임금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경빈에게도 이런 조정의 고뇌가 전해졌다. 비록 후궁이지만 나라를 위해서 무언가 해봐야 한다는 충정도 타올랐다. 역시 바둑으로밖에는 해결책이 달리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경빈은 자신의 고향인 상주 문경으로 사람을 급파하여 원심스님을 부르려고 하였으나 스님은 벌써 득도하여 도인이 된 경지인지라 일체의 잡기를 하시지 않는다는 전갈이 와서 다른 바둑 고수를 구하였는데, 그가 바로 경남 함양 풍천노씨 집안의 노의국이었다. 그의 조부는 노숙동으로 함양에 입향한 중시조이며, 그의 집안 후손 중에서 호조참판을 지낸 노광두의 증손인 사초 노석영이 탄생하게 된다. 노사초 선생이 일제 초에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기타니(목곡실)의 제자 혼다도시코에게 집백으로 만방을 이겨 세상을 놀라게 하였으니 이 집안과 바둑의 인연은 뿌리가 깊다 하겠다.

 

노의국의 집 앞에는 종석이라 하여 다음 사진과 같은 바위가 서 있는데, 이런 바위가 주변에 있다는 것은 양택풍수에서 대단히 명당으로 꼽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특히 봉황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오려는 형상 아닌가?

하여간 경빈은 노의국을 서울로 오게 하여 자기 처소로 불러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간곡하게 부탁하였다.

노 선비! 젊은 그대에게 말 2천 필을 맡기노니 혼신의 힘을 다하여 나라의 간난(艱難)을 해소하여 주기를 바라마지 않소!”

마마, 소신 비록 미욱하나마 나라를 위하여 전심전력으로 애써 보겠나이다.”

 

노의국은 당시 30세의 장년으로 눈빛이 형형하고 체구가 당당한 호남이었다. 중종의 허락을 받은 경빈은 노의국과 함께 영빈관으로 나가 중국사신을 접대하였다. 경빈도 물론 대국하는 그 자리에 배석하였고, 삼정승 중 한 사람은 번갈아 자리를 지켜 주었다. 사신 측에서는 사신의 종사관과 놀이 삼아 따라온 사신의 친구 바둑고수도 함께 관전을 하였다. 대전께서도 가끔 들러 관심을 가져주기로 약조하였다. 그 외에 궁녀들 7,8명이 심부름을 했다.

 

영빈관 대국의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대궐 바깥으로 번져 나갔다. 본래 대궐이나 영빈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민간에 소문이 되어 돌고 도는 일은 거의 없었다. 대궐에서 함구령이 내려지면 궐 밖 출입을 하는 궁녀들도 일체 입을 다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바둑 대국에 대한 소문이야 궐에서도 거리낄 게 없는 터이니 함구령이 내려질 까닭이 없었다.

 

중국사신이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소문은 사신이 의주를 떠나자말자 나기 시작해서 그 대국자로 노의국이 선발되었으며, 고수로 이름난 경빈마마가 관전을 한다는 둥, 바둑으로 사신을 이기면 말 2천 필의 조공이 면제될 것이라는 기대 반 걱정 반의 소식은 큰 사건 사고가 별로 없던 그 시절에는 백성들의 입과 입을 통해 전국으로 번져 나갔다.

 

종로 육의전 중 곶감 대추 잣 등 건과(乾果) 가게 한 칸이 비워지고 큰 바둑판이 한가운데 놓여졌다. 전국 바둑 고수들이 모여왔기 때문이다. 대개 바둑 고수들이란 부자 양반네 자제들이기에 씀씀이가 헤퍼서 이 사람들이 머물면 떡고물이 많이 떨어지기에 건과를 파는 것 못지않게 수입이 좋았다. 영빈관 대국에서 놓아지는 수마다 즉시 심부름꾼 궁녀를 통해 육의전의 검토실로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경빈의 은근한 지원이 있는 일이었으므로 아주 실시간으로 전달되었다. 경빈도 노의국에게 위기가 찾아올 경우 검토실에서의 의견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므로 상당한 은자(銀子)도 베풀었다.

 

경빈의 바둑 실력은 Series~1에서 익히 이야기한 바 있다시피 당시 전국 최고수급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스스로 중국 사신과 대국을 할 수는 없었으므로 노의국이라는 고수를 초빙하여 대신 대국하게 한 것이다.

 

영빈관의 저녁식사가 끝나고 호산춘(胡山春;경상도 문경 땅에서 나는 명주, ‘이 붙으면 진상품이라는 뜻)로 술이 한 순배 돌고나자 사신은 종사관에게 뭔가를 재촉한다. 경빈은 무슨 재촉인지 훤히 알면서 짐짓 모른 체하고 술을 더 권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경빈의 미모에 넋이 빠져 술잔을 연거푸 기울이련만 익히 들은 소문대로 사신은 술에 큰 흥미가 없는 모양이었다. 무희들의 춤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로지 바둑판만 찾는 눈치였다. 경빈이 이 틈새를 놓치랴! 바로 짚어나갔다.

 

따렌[大人]께오선 무슨 급한 일이 있으시기에 안절부절하심니?”

울리살람 다른 것은 불필요하다해! 조선국의 바둑이 고강하단 소문이 들려, 내 온 김에 한 수 배우고 가고 싶소만…….”

호호호 나라가 커야 인재도 더 많이 나온다고 하잖슴둥? 오히려 대인께 한 수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은 줄 알고 있슴메.”

공연히 겸손 떨지 마시라 해! 어여 한 판 꿰매볼 터이니 대국자를 수배해주라 해.”

저희 소국에선 내기 꼰을 두지만 복잡하고 어려븐 바둑은 고수가 없음둥. 허나 따렌께서 이키나 원하시니 마당한 사람을 알아보겠슴둥.”

감사하다 해! 어여 불러오라 해.”

 

그러면 따렌께서도 내기 바둑을 좋아 하시남? 저희는 본배가 없다 보니 내기 바둑이 아니면 바둑도 아니라고 여김둥.”

울리살람 내기 좋아한다 해. 마짱(마작), 웨이기(圍碁) 등은 그냥 두면 재미없어 해. 어릴 때도 그랬지만, 내기를 걸어야 싱겁지 않다 해,”

따렌께서는 시원시원해서 좋수다래. 뭘 걸었으면 좋겠슴메?”

황금 열 냥이믄 의미 있다 해.”

아니 대국의 고관대작께오서 이 무슨? 아이돌 장난도 아니고……. 소국이라 배포가 큰 사람이 없다고 깔보는 말쌈이심?”

아니오레, 아니오레! 마마께서 말씀해보셔 해.”

5천 필을 내기로 걸면 워떠커쑤?”

사신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실현불가능한 이야기는 접고 그냥 2천 필 정도로 합시다 해.“

경빈도 맞장구를 쳤다.

좋수다 해. 2천 필로 정했수다. 바둑 끝나고 다른 말 하기 없기다 해!”

 

사신은 그럴 일이야 전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혹여 만분의 일이라도 자기가 질 경우 별 탈 없이 판돈을 지불하려면 자기가 갠적으로 요구한 조공 말 2천 필을 면제해주면 황제에게도 아무런 위신 깎임이 없을뿐더러, 조선에도 좋다고 생각했기에 2천 필에 응한 것이다.

 

경빈은 어린 시절 생부(生父)로부터 여염집 계집애가 바둑에 관심을 둔다고 여러 번 꾸중을 들었다. 아버지 말씀, 바둑은 중독성이 너무 강해서 본래 선비 집안에서는 배우지 못하게 했다.’고 강조하셨다. 바둑 두는 사람은 예로부터 대사불성(大事不成:큰일은 못 이룬다는 뜻)이라 했다. 친구 사랑방에 가서 바둑을 두는 사람은 자기 집에 불이 나도 두던 바둑을 다 두고 가는 한심한 인간들이다.’라고도 하셨다. 그러나 워낙 바둑에 소질이 있던 박소저였던지라 배우지 않고 어깨너머로 구경만 해도 실력이 느는 것을 어찌하랴! (필자 생각에 경빈이 현세에 환생하여 여류 기사 중 어떤 한 분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사신이 물론 백을 들었음은 물론이다. 어차피 공제가 없는 시절이었으니 노의국에게는 편한 대국인 셈이었다. 그러나 중국 사신도 내심으로는 자신감이 충만하였을 터였다. ‘조선땅에서 바둑을 잘 두어 봤자 얼마나 두랴!’ 하며 소국을 깔보는 심리가 절로 작용했을 터이니 자신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게다가 중국 전역을 바둑으로 휩쓸었고, 멀리 왜국의 고수를 불러 여러 번 크게 이겨 보았던 자신이기에 네웨이핑 이상의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빈도 자신만만하였다. 아무리 노회한 중국 사신이라 하나, 경국지색인 자기가 옆에 앉아 있으면 저절로 눈길이 자꾸 올 것이고, 그때마다 살짝 미소를 흘리면 정신이 산만해 지리라고…….

의국은 로 소목을 두었다. 사신도 대각선 귀를 로 차지하였다. 우상귀 정석 진행 중 백8로 한줄 왼편에 호구로 두는 것은 이 포석에서는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만약 호구를 둔다면 백10을 한 칸 더 왼편(I-3)으로 두어야 하는데, 흑이 눈목으로 다가왔을 때 흑은 안성맞춤이요, 백은 중앙으로 한 칸 뛰어 지켜야 하니까 발이 느려지는 것이다. 사신이 겉으로 풍기는 거드름으로 봐서는 호구로 둘 수도 있다고 경빈은 생각하였으나 이 수를 보고는 그 경지에 마음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보통 내공이 아닌 것이다. 당시 동네 고수들 중에는 이런 것도 따지지 못하고 생각 없이 덜퍽덜퍽 두는 이가 대부분이었으니 경빈은 입궁(入宮)하기 전까지 어느 고을 고수라 해서 일부러 찾아가 관전할 때마다 실망을 금하지 못하였었다.

 

의국은 고심을 하는 듯 한참이나 망설인 끝에 흑17로 상변을 두지 않고 마늘모로 붙였다. 의국의 그런 마음이 경빈은 잘 이해되었다. 상변에 일자로 두자니 백10과의 거리가 세 칸이나 되어 백에 대한 영향력이 별무신통이므로 고심 끝에 둔 협공이리라! 경빈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고강한 의국의 실력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경빈 스스로 생각해봐도 막상 상변에 두려고 해봤자 어정쩡한 수뿐이니 말이다. 14에 대해 두칸높은협공을 하지 않고 아래 그림처럼 바로 흑15로 두어도 마찬가지다. 10에 대한 영향력이 거의 없지 않은가?

 

 

 

또 흑11은 우하귀 빈 귀에 둠(P-17)이 온당하였다. 그러나 의국의 태도를 보건대 흑9가 있어서 바쁜 곳이 아니라고, 또 차라리 흑13으로 뒤를 쫓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아직 젊은 혈기 아니던가? 경빈은 이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신도 백14로 좌하귀를 협공<참고도-04>처럼 하면 흑은 중앙으로 두 칸 뛰고, 백이 하변으로 두 칸(G-17) 벌리면 흑15의 벌림과 협공이 이상적이어서 좌하귀를 두지 않았을 것이다. 좌우지간 <참고도-04> 그림은 백에게 이로울 게 없을 것이었다.

경빈이 의국의 손길이 넘나드는 것을 보니, 15를 좌변 화점 아래(C-10)로 둘까 고려하다가 백이 <참고도-02>처럼 백16으로 되협공했을 때, 23으로 봉쇄할 수 있으므로 흑15가 좋다고 본 것 같았다.

역시 아는 것만큼 보이는 게 바둑이라고……, 쿄쿄쿄.’라고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경빈이 보건대 <1>에서 흑17<참고도-03>처럼 두고 좌하귀를 A로 두는 것이 온건했다.

 

본보 백18은 묘수로 보인다. 경빈은 <참고도-04>를 예상했고, 의국이 사신보다 훨씬 젊으니까 급전으로 몰아붙이는 것이 더 낫다고 보았다.

 

  

그런데 마늘모로 두다니! 경빈은 의국을 흠칫 쳐다보았다. 겉으로는 표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놀란 표정이 배 나온다. 집어 들던 돌을 바둑알통에 다시 떨어뜨리고는 왼손으로 턱을 괸다. 수를 읽고 있음이다. 그리고 또한 자신도 놀랐다. 심각한 생각에 잠긴 이런 청년이 이처럼 아름다울 줄이야! 남자에게는 일이야 하든지 말든지 아양 떠는 여자가 예뻐 보이고, 여자에게는 자신의 일에 열중하여 심각한 표정을 짓는 남자가 믿음직스러워 보인다는 옛말이 이토록 맞아 떨어지다니! 임금의 후궁인 자기는 여태 매력을 느껴본 남자가 거의 없었다. 물론 느껴서는 안 될 신분이기도 하지만, 눈에 이리 확 들어오는 남자는 일찍이 없었다. 심쿵했다.

 

가볍게 머리를 흔들어 떠오르는 잡념을 떨구어 내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다음 수를 연구해 보았다. 대강 <참고도-05>가 그려진다. 잘 모를 때는 그 부분을 생략하고 딴전을 피우는 게 낫다는 말이 있기야 하지만 여기서 손을 빼다가는 주도권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의국의 대응이 궁금해졌다.

일단 흑은 19로 한 칸 뛰고 백20을 기다려 21로 내려서고 22로 건너가면 23으로 과감하게 찔렀을 때, 백은 바로 건널 수가 없으니 24로 이은 다음 흑도 25로 잇고 백이 26으로 호구한 다음 흑이 27로 받을 때 백이 28로 건너갔다고 치자.

 

경빈은 다시 머리를 흔들었다. 이 접전의 결과는 누가 보아도 흑이 똘똘 뭉쳐 공중에 떠버린 형국이니 앞길이 캄캄한 양상이다. 이건 아니다.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의국이 끙 신음 소리를 내며 <1>의 흑19로 내려섰다. 경빈은 자신도 몰래 무릎을 내리쳤다. 그래 이것이다. 역시 노씨 집안의 내력은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임기응변에 능하지 않고서야 고려말 미미한 집안에 불과했던 풍천노씨가 어찌 신흥 사대부가에서 행신께나 하는 지위에 올랐겠는가? 노숙동은 참판지위에 올랐고, 고려사를 집필하기도 하여 시증조부인 세조대왕 때 청백리로 선정되었으며 상호군이란 군호를 받은 분이었다. 계유정난 1등공신인 한명회는 상당군에, 홍윤성은 인산군에 봉해진 것처럼 군호를 받았다는 것은 왕족의 혈족이란 말 아니던가? 역시 왕대밭에 왕대가 나는 법!

  ================= 아기다리고기다리, 제2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