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소설 [어당팔] 제14장
14. 가능성이 짙어오다
매일 같이 그녀들의 퇴근시간이 되면 나는 그녀들의 뒤를 따라 걸었다. 말없이 그냥 따라 걷다가 그녀들이 헤어지게 될 때쯤 장복희를 따라 또 걸었다. 그녀의 집은 원룸이었으므로 다른 어떤 지방이 그녀의 집일 터였다. 그녀의 말투로 보아 충청도 권인 것으로 파악되나, 여자의 말투는 자유자재이므로 섣부르게 판단할 필요는 없다. 그녀가 원룸으로 들어가면 나는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내 원룸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해먹기도 하고, 사먹기도 하면서 저녁시간을 무료하게 보냈다. TV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책도 읽기가 싫었다.
그러나 결말은 쉽게 왔다. 그녀들을 따라 걷던 4일 째, 나에게 장복희는 다가왔다.
“아저씨, 저랑 좀 함께 걸으실래요?”
“네, 그러죠.”
“박하준씨라면서요? 맞나요?”
“네! 그렇습니다.”
“제가 장복희라는 건 이미 알고 계시죠?”
“네.”
“제 친구 민희가 저에 대해서 간략하게나마 말씀드린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네.”
“사귀는 사람 있다는 거 알고 계시죠?”
“네.”
“그런데, 매일 저를 이렇게 따라 걸으시면 제가 부담 많이 느끼게 된다는 것도 알고 계시죠?”
“네.”
“그걸 알면서 왜 그러시는데요?”
“저도 저를 모르겠습니다.”
“사실 제 남친이 군에 가 있어요. 대학 졸업해서 학사장교 시험을 쳐서 공군에 장교로 가 있죠. 제대하려면 아직 일 년 반이나 남았지만, 거의 서로 장래를 약속한 거나 진배없어요.”
“네, 그러시군요.”
“이렇게 제 입으로 소상하게 말씀드렸으니까 이젠 포기하세요.”
“제 마음이 잘 정리가 되질 않습니다.”
“제 사정은 이미 말씀드렸고, 혹시 친구 중 키 큰 민희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참 친절한 아가씬데……, 아직 남친도 없구요.”
“꿩 대신 닭이라는 말씀인가요?”
“아뇨, 오히려 닭은 제 쪽이죠. 민희는 마음씨도 참 곱답니다.”
“사자는 풀은 먹지 않죠.”
“뭐라구요? 사자? 풀? 호호! 아니 그럼 아저씨가 육식이란 말씀이에요? 전 살점이구요?”
“비유가 좀 어설프긴 했지만, 마음자리라는 게 이 사람 안 되면 금 방 저 사람으로 갈아끼움되는 건 아니죠.”
“예, 그 말을 이해는 하겠습니다. 그러나 전 이미…….”
“저도 막무가내 스타일은 아닙니다. 피해를 주고 싶은 마음도 없구요.”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데요?”
“그 남친이란 분 현재 곁에 안 계신다고 함부로 말하는 것 같지만, 제 마음 정리할 동안만 몇 번 더 만나 주실 수 없을까요? 서너 번 정도만 데이트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음~! 그러죠, 뭐. 삼 세 판이라고, 세 번 데이트해 드릴게요. 내일부터 가능하니까 날짜 잡으세요.”
“저~ 복희씨 삼 세 판 말고, 네 번으로 하면 안 되겠습니까?”
“꼭 그래야 할 까닭이 있나요? 무슨 곡절이 있습니까?”
“네, 삼박자라면 노래도 너무 슬프고 장중해서요, 네 박자가 훨씬 더 안정감 있다고 평소 생각해 왔거든요.”
“으음~! 일리가 있네요. 그러죠 뭐, 에라이 인심 썼다. 네 번으로 해요. 이젠 됐죠?”
“네, 고맙습니다. 그리고 첫 데이트는 내일 신청합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네, 직장에서 응급상황 같은 큰 일 생기지 않으면 가능하죠. 그냥 퇴근시간에 늘 하시던 대로 저희들 따라 오시겠어요? 익숙하시잖아요! 후후.”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데이트 코스는 제 맘대로 잡아도 되죠?”
“그러세요, 허나 제 친구들을 함께 데리고 다니는 것도 허락해 주셔야 해요.”
“그건 좀…….”
“아니, 왜 그러세요? 제가 무리한 요구를 했나요?”
“아뇨, 그렇지는 않지만, 3:1의 데이트란 저에게 너무 불리한 것 같아서요.”
“호호호, 그건 좀 그러네요. 그러면 둘만의 데이트를 약속해 드릴 테니, 장소는 시내로 제한해요. 아저씨 요구를 들어 드렸으니, 제 요구도 하나 들어 주셔야죠? 여자는 함부로 멀리 쏘다녀서는 안 된다는 게 부모님 가르침이라서…….”
“네 좋습니다. 시내로 한정한다는 거야 뭐 충분히 납득됩니다.”
“그러면 내일 만나시죠. 저는 오늘 시장 볼 게 좀 있어서 이만…….”
“네, 안녕히 가세요. 내일 뵙겠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희창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야! 드디어 만날 약속을 잡았다. 내일부터 네 번 만나기로 했어.”
“뭐? 네 번 만나서 완전히 뻑 가게 활 방법이 있냐?”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네 번이나 만나는 기회를 잡긴 잡았잖냐?”
“그래, 뭐 네 번이 열 번이 되고, 마흔 번이 되고, 백 번이 되고 할 수 있지. 야! 축하한다. 잘 준비해라.”
“그런데 문제가 좀 있어. 사귀는 남자가 있대.”
“그러면 뭐 하러 만나냐? 뺏을 작정이냐?”
“아니, 그럴 작정은 아니고, 내 마음 정리하게 서너 번 만나 달라고 했지.”
“너 또 펴엉신 소리 듣고파 몸살 나냐? 짜식아 그런 헛공사를 뭐 하러 하냐? 강에 나가 돌이나 던지지.”
“나를 완전히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더라구. 날 보는 그녀 표정이 심각하진 않았어.”
“어이구, 내가 미쳐요, 미쳐. 넌 지금 심심풀이 땅콩이 된 거야. 임마!”
“아냐, 그녀는 절대로 사악해 보이지는 않았어. 날 갖고 놀겠단 생각을 할 여잔 아니야.”
“짜샤, 노름꾼이 처음부터 타짜 되냐? 그 판을 굴러먹다보니 그렇게 되는 거지.”
“ 넌 어째 세상을 그렇게 비관적으로만 보냐?”
“그거냐 네가 더 비관론자 아냐? 키 작아서 맨날 폭탄 노릇 했다며?”
“그나저나 수문장이 있는데, 내가 서너 번 만나도 될까?”
“어휴, 병통아! 그럼 유부녀는 집안에서만 살아야 하게?”
“넌 왜 말끝마다 병신깡통이 나오냐? 재수 없게시리…….”
“너 하는 짓이 그런 말 듣고도 남지 않냐?”
“수문장을 제치는 방법도 있냐? 허나 이건 축구가 아니잖니?”
“임마! 자주 만나면 정 드는 게 남녀 사이야. 자주 만나기나 해봐!”
“네 번으로 약속했는데?”
“허허허, 내가 이런 놈을 친구라고……. 펴엉신아! 약속은 깨지라고 있다는 거 인터넷에서도 보았잖냐? 좌우지간 이 핑계 저 핑계 대서 자꾸 횟수를 연장시켜~!”
“그 다음엔?”
“남자가 둘이고, 여자가 하나니깐, 셋이 만나는 거야. 그런 상황을 만들어 놓고, 여자에게 선택을 시키는 거지.”
“그녀가 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너 자꾸 병신 소리 들을래? 그 남자보다 너에게 더 기울어졌다고 생각되는 그 시점에서 만나야지! 이젠 됐다. 시작이 반 아니냐? 거의 성공한 거야. 그녀를 감동시킬 일들이나 잘 준비혀!”
“그래 고맙다. 시키는 대로 해볼게. 다음에 또 보자.”
“그래 안녕, 폭탄아! 하하하.”
희창이와 수다를 떨고 나니 어쩐지 가능한 일일 것도 같았다.
===끝===그 동안 재미없는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로또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