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탐방

[스크랩] 장터 이야기-05(의성군 봉양장)

더바 2011. 4. 1. 08:41

장터 이야기

의성군 봉양면 『봉양 장터』

 

도리원(桃李院)은 고려시대부터 원터가 있던 곳이다. 원터란 조정이나 지방의 관원들이 공무 여행을 하다가 묵는 곳인데, 본래 이곳에 장터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200여 년 전, 도원리에 있던 장터가 큰 홍수를 만나 폐허가 되자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지금 현재 면소재지가 된 도리원은 쌍계천과 지류의 사이에 위치해 있어 땅이 기름지고 경치가 좋은 곳이다. 옛날부터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만발하는 곳이라 도리원으로 불렀다 한다. 대구에서 안동으로 가는 길목이며, 안계 다인 예천으로 가는 갈림길이기에 교통의 요충지이다. 그래서 봉양면 내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 되었다. 면부의 장터 치고는 상당히 큰 장터이기에 장꾼들도 많이 모이는 편이다. 즉 비안면 안계면 구천면 단북면 단밀면 등의 농민들이 필요한 물품을 구하려고 많은 농산물을 가지고 모이는 곳이므로 모든 상거래도 상당히 활발한 곳이다.

 

<모자 사는 할매>

좀 이른 시각이라 장터는 아직 손님이 좀 적은 편이다. 할머니 한 분이 모자 노점상에게 오시더니,

“예쁜 모자 하나 줘 보소.” 하신다.

“쓰고 계신 것도 이쁘네요.” 장꾼이 칭찬을 하자,

“내가 뇌수술을 해가지고 모자를 꼭 쓰고 댕기야 하는데, 여러 개 있어야 안 되겠니껴?”

“우야다가 다친능교?” 할매는 이리 물어올 줄 알고 미리 물어봐 달라고 선수를 친 것이리라.

“할바이하고 일하다가 경운기에 칭기 가주고 죽다 안 살았나? 날 쥑이고 젊은 것하고 살라꼬 그랬지 싶으더라.” 하시며 껄껄껄 웃으신다.

“그만(그러면) 이거 쓰소. 다방년보다 더 이뻐 보이구마!” 하고 제법 꽃무늬가 화려한 큰 창의 모자를 권한다.

할머니는 값도 적당한지 하나 구입해 가신다.

 

<호박 사는 할매>

채소 난전에 걸걸한 목소리의 할머니가 오셨다.

"맛없는 호박 이거 얼매이껴? 한 개만 주소." 할매의 화통한 구매 의욕을 본다.

"와 맛없다 부르면서 사능교? 진짜로 맛 없어지구로!" 남들 들을까봐 목소리를 깔아 나무라는 장꾼!

"이기 머 와 이리 물렁물렁하노? 따온 지 오래 된 거 아이가?"

"하우스 농사가 다 그렇지, 햇빛 본 거 하고 같겠능교?"

"하기사 그렇겠다. 철도 아닌 기 나와씅께 힘 쓰겠나? 물렁한 기(것이) 영(아주) 우리 영감 꼬치 겉네!"

둘러섰던 장꾼들이 박장대소를 한다.

 

<감자 사는 할매>

1톤짜리 화물차를 세우고 뒷문을 열어 각종 채소와 감자 바구니를 늘어놓은 장꾼에게 할머니 한 분이 다가오신다.

“비니루 바가지에 담아 놓은 기 1키로 되니껴?” 무게에 관하여는 눈대중이 없으시다.

“하하하, 할매요, 5키로도 넘니더. 1관 반이나 된다 말일시더.”

“그기 얼맨교? 하지만 맛이 좋아야지 마이 주마 머 하노?”

“3천 원만 주소. 그라고 맛은 물어볼 필요도 없니더. 강원도 감잔데 맛이야 물어볼 필요가 있겠니껴?” 강원도 감자바우는 믿을표라는 이야기로 턱도 없는 논리를 편다.

“당파는 어예 하노?” 감자 얘기에 말려들어 안 사고는 못 배길까봐 장꾼의 다음 말을 막아 버린다.

“당파 살라꼬요? 당파 이거 제주도 낀데 야들야들한 기 맛이 좋구마. 이거 사다 심으소. 당 있는데 좋구마.” 당뇨환자에게 당파가 좋다는 말이지만 씨가 안 먹히는 눈치다.

“닌징은 얼만데?” 당근을 일본어로 말하며, 자신이 유식하니 얕보지 말라는 뜻을 내비친다.

“오천 원!”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는 사람은 본래 잘 안 산다는 장꾼의 계산이 아주 짧은 답으로 내뱉어진다. 귀찮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쥐포 사는 할매>

봉양은 내륙 중에서도 내륙인지라 장 보러 나온 노인들이 어물전에 많이 모여 든다. 건어물 가게 앞에서 쥐포 흥정이 붙었다. 좀 젊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값을 깎아 달라고 조르신다. 구천 원 줄 작정으로 깎으신 모양이다.

“아따, 만 원은 무신 만 원. 팔천 원 해라 고마. 천 원이야 안 남겠나?”

“할매 거 무신 소리요? 팔천 원 받아 우예 천 원이 남노? 그래는 안 되누마!”

지나가던 다른 할머니 한 분이 아는 체를 한다.

“자~아(장에) 나왔나? 지포는 와 사노?”

“쩍은 기(둘째딸) 아(자식) 딜꼬 집에 와 있다. 외손자가 이거만 찾는다.”

“글타고 거 비싼 걸 자꼬 사다 미기마(먹이면) 우야노? 돈도 마이 들 낀데.”

“글씨 말이다. 딸년이 도둑년이라고, 큰 거와 쩍은 기 띠동갑인데, 큰 거는 지 남편이랑 열심히 일해가(일 해가지고) 알뜰살뜰 잘 사는데, 쩍은 기 너무 어린 걸 시집 보냈디이마는 맨날 친정 와서 파묵는다. 영감 몰래 내가 또 대주고 또 대주고 했디이마는 자꾸 기대 싸서 몬살겠다 고마.” 신세한탄이 일사천리로 주룩 흐른다.

“애 묵는다, 니나 내나 자석이 젤 걱정이제. 우예겐노(어쩌겠나)? 때리 지기지도 몬 하고…….” 함께 한탄하며 동의로 위로한다.

 

<돔배기 사는 할매>

바로 옆은 생선 난전이다. 늙수그레한 부부와 젊은 부부가 함께 장사를 하는 걸로 보아 부모 자식간인 듯하다. 자식 부부는 말도 없이 부모들이 언 생선을 떼라면 떼고, 파는 생선을 자르라면 자르고 하였다. 그러던 중 얼굴이 좀 가무잡잡한 할머니 한 분이 오신다.

“돔배기(상어고기) 한 토막 얼마이껴?” 저편 난전에서 다 물어 보았기에 가격은 대충 아시는 표정이다.

“아지매, 이거 두툼한 건 이만 오천 원, 좀 납작한 건 이만 원 주소.” 장꾼 눈에도 할매로 보이겠지만 오랜 장사의 기본기에 의해 절로 ‘아지매’란 말이 나온다.

“아따 조곰만 빼주소. 봄가뭄에 돈가뭄 들어 돈 없다.”

“영감 제사이껴?” 남편 제사라면 깎아 줄 가능성도 있음을 은근히 내비친다.

“아이라, 영감은 살아 있고, 조상들 제사 들어가주고……, 집안 조카들도 모도 오고 해서. 그라고 쪼구(조기)도 사야 된다. 쪼구는 어예 하노? 두 마리는 해야 될 낀데.” 눈치도 없이 사실대로 말씀하시는 할머니다.

“한 마리 팔천 원, 두 마리 만 육천 원인데, 돔배기 사이꺼네(사시니까) 사만 원 주소.” 영감 제사 아니면 불쌍한 할매 아니니, 덜 빼줘도 된다는 계산이다.

“천 원빠꿈 안 빼주나?” 큰 제사라 영감님과 상의하여 두둑히 돈을 갖고 나온지라 크게 섭섭해 하시지도 않는다.

“지금 원자력이 터져 가지고 일본 물고기가 안 들어오이꺼네 우리도 비싸게 띠 오기 땀시로 남는 기 없니더!” 장사꾼의 논리는 항상 정연하다.

“돔배기는 쫄기쫄기한 기 맛있는데……, 퍼석한 거는 진짜 못 묵는다.” 돈보다는 맛 걱정이고, 뱃살을 권하는 장꾼의 말을 잘 믿지 않는다.

“걱정 마소. 일본산이나 중국산은 아예 안 들어오이꺼네. 전부 국산이구마!” 바닷물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도 고향 떠나 사는 일이 없다는 확신이다. 게다가 일본산이나 중국산보다 우리나라 상어고기가 더 쫄깃하다는 논리도 들어 있으니 아주 흥미롭다.

“수루매(오징어) 다섯 마리는 다 다디머(다듬어) 났니껴?” 어물전 아들이 다듬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묻는다. 그냥 기다리기 지루하니 '대화가 필요해' 식이다.

“돌아서마(돌아서면) 오리고 오리고(오르고) 하이, 돈 없어 고기도 못 띴니이더(뗐습니다)! 일본에서 고등어 안 들어옹께 이것도 자꾸 오리누마(오릅니다)! 팔고 나서 다시 사러 가면 그새 올라뿌고......”

3월 11일 일어난 일본 쓰나미는 한 달 뒤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도리원 장터에도 그 영향을 이렇게 미치고 있었다. 한편 물고기를 비롯한 먹거리는 좌우지간 국산이 최고라는 믿음이 전국민에게 심어져 있음도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씨앗 사는 할매>

수백 가지 채소 씨앗을 늘어 놓고 파는 할아버지 앞에 할머니 한 분이 다가오신다.

“적상추 있니껴?” 일단 쉬운 것부터 운을 떼신다.

“여 있니더. 한 봉지 주까요?” 팔 욕심에 선뜻 대답하고.

“조선 물이(물외;오이)도 마이는 필요 엄꼬, 쪼매만 있으믄 되는데…….”

“있고마고요, 그라고 다른 거 또 말해 보소.”

“근대 아욱 신선초도 봉지 다는 필요 엄꼬, 우예만 좋노?”

“반 봉지씩 덜어 디릴텡께 걱정 마시오.”

장꾼 할아버지는 봉지를 잘라 씨앗을 헤아려서는 거의 반씩 다른 종이에 싸고 담아, 삐뚤한 글씨지만 씨앗 이름을 쓴 뒤에 비닐봉지에 넣어 건네려 한다.

“아, 잠깐만 있어 보소. 저 딴 데 가서 더 살끼 있니더. 조곰 있다 오께.”

“아 거 다 싸놨는데 안 가주 가마(가져 가면) 우야노?”

“저 우에 갔다 온다 안 하나? 속아만 봤나?”

씨앗 거래는 정중하게 시작되더니, 고만 반말로 끝나간다. 씨앗을 사는 도중에 마음이 변했는지, 할머니의 휙 사라지는 품새가 다시 올 것 같지 않다. 할머니가 떠난 후 영감님의 중얼거림이 욕지거리로 얼버무려진다.

 

<외손녀 아기 들어서게 한 무용담 할매>

저쪽에서 할머니 두 분이 나물을 팔고 계신다. 더 젊은 할머니는 시래기 두 묶음, 달래 서너 봉지, 씬내이(쓴냉이;씀바귀) 두어 봉지 늘어놓았고, 나이 많은 할머니는 당파, 시금치, 냉이 도라지 등을 늘어놓고 계신다. 두 분이 주고받는 대화를 잠시 엿듣는다.

젊할 : 우리 큰딸내우(내외)는 일도 열심히 하고 지 살 도리 잘 챙기고 사는데, 적은 기 영 말이 아니라서. 이년이 낳은 외손녀는 시집가서 7년이나 살았는데도 아가 안 생기는 기라. 아(아기) 선다면 온갖 짓을 다하고 댕깅께 돈이 막 나가지 머. 점쟁이한테 물어 보이 아(아기)가 보이기는 보이는데 자꾸 삭아뿐다 안 하요?

늙할 : 거 머할라꼬 자꾸 날라 하노? 기냥 돈 벌어 내우간에 잘 묵고 잘 쓰지.(냉소적)

젊할 : 그래가(그래가지고) 병원에 가서 알아보이꺼네 자궁이 꼬부라졌다 안 카요? 이거 큰일 났다 싶어 걱정을 하던 중에, 내 희안한 일 봤니더.

늙할 : 머가 희안하더노? (안 물어도 이야기할 것인 줄 알지만, 억지로 물어봐 준다.)

젊할 : 영감이 밭에 거름 내니이라고 경운기 끌고 가다가 흘맀는지 밭둑 냇가 쪽에 똘호박(심지 않았는데 저절로 난 호박이란 뜻으로 ‘돌호박’이란 말)이 한포기 안 났는가베? 거름도 안 주고 하나도 안 가꽜는데 호박이 얼매나 주렁주렁 열리던지 대단하디이더. 그런데 그기 가을 됭께, 한 아름이나 되는 큰 호박 세 개를 한 넝쿨에 달고 있능기라. 그것도 호박 배꼽이 하늘을 보고 있는데다가 그늘도 없어서 햇볕을 얼매나 받아 놨는지 누렇게 잘 익어서 아주 보기 좋았니더.

늙할 : 잘 익었으마 따다 묵지 머핸노? (너무 객관적이고 퉁명스럽다.)

젊할 : 이런 호박이 약되는 거 아직 모리요? 아 못 놓는데 이기 바로 직차로 약되지이. 영주 사는 적은 딸년한테 전화해서 이런 호박이 있는데, 너거 딸아 아 놓구로 약으로 써볼래 항께, 아무도 못 따가게 잘 지키라 하디이더. 그래가 날 잡아서 오라 캐 가주고 그 호박을 따서 영주꺼정 가서 외손녀를 친정(작은딸집)으로 오라 캤지요. 외손녀가 오길래 꿇어앉으라 해놓고, 판(밥상)에 호박 올리 놓고 내가 삼신 할마이한테 빌고, 호박 다 삶아서 또 판에 얹어 놓고 또 빌고 한 다음에 미깄지요(먹였지요). 이상도 하제. 그 다음 달에 태기가 있디이마는, 그기 딸을 낳아가주고 올 팔 월이면 두 돌 된다 말이시더. 참 희안하지 않능교?

늙할 : 그란다고 자석 득 볼라? 안 생기마 놓지 마지, 머할라꼬 애써 쌓노? 세월 꼬라지 봐라, 자석한테 바랠 필요 전혀 없지러! 병원(요양원)에 갖다 버리지, 제주도 내다 버리지, 같이 살자 하까봐 겁난다 카이!(자식들 이야기 전혀 안 하시는 걸로 보아 자랑할 게 별로 없으신 듯)

젊할 : 득 볼라고 놓나, 키우는 재미로 놓지. 내도 같이 살 생각………….

길고 긴 이야기를 거의 다 듣긴 들었는데, 안계 방면에서 오는 11시 도착 시내버스가 왔는지 갑자기 장보러 온 손님들이 확 불어났다, 그리고 장터가 너무 시끄러워져 더 이상의 대화는 들리지 않았다. 철이 봄바람 불어오는 식목일 어림이라, 대 여섯이나 되는 묘목 상인들이 짭짤하게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주로 묘목을 사가는 분들은 그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를 거의 잡수실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백발노인들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심심풀이로 더러 깨먹는 호두알이 누구 덕으로 이리 고소한지는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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