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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Re:달걀을 든 할매~온상(溫相)

더바 2010. 6. 24. 20:33

달걀을 든 할머니 ~ 溫相


고3때 도시에서 자취를 했습니다. 계란 장수가 골목을 다니며 외칩니다.

“알이나 계란이나 달걀 사이소~!”

자꾸 듣다보니 알과 계란과 달걀이 다 같은 사물을 가리킨다는 걸 알게 되더군요. 참 유머러스한 장수였습니다. 듣는 사람도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듣기보다는 훨씬 덜 지겹죠.

이 할머니께선 왼손에 계란 한 판을 드셨네요. 가져 가셔서 찔지, 삶을지, 부칠지 모르겠습니다만 틀림없는 건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함이겠습니다. 이 얼마나 갸륵하신 심정입니까?

알은 생명입니다. 새가 낳은 새 생명입니다. 그리고 알은 둥급니다. 둥근 것은 원만함을 뜻하죠. 원만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됩니다. 우리 인간의 가장 완성된 인격을 원만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새롭고 원만하니 주역 책을 일관하는 원형이정(元亨利貞)에 해당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공처럼 완전히 동그랗지 않고 타원처럼 길쭉하죠. 한 쪽은 굵고, 다른 한 쪽은 약간 가늘고. 그래서 책상위에다 달걀을 굴려도 빙 돌아 제자리로 돌아올 뿐, 책상 밖으로 굴러나가 떨어져 깨지는 일이 없습니다. 수천만 년 진화해 온 결과겠죠.

오른손엔 장바구니를 드셨네요. 몸이 왼편으로 기울어지신 걸 보면, 오른손에 든 장바구니의 무게가 왼편 달걀 쪽보다 더 나갑니다. 아마 식용유도 들어 있겠지요. 그렇다면 다른 부침개 재료도 들어 있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배추나 무일지도 모릅니다. 촬영시점이 설 전이라면 설음식 준비 장바구니겠습니다만, 날짜를 모르니 그냥 집안에 축하할 만한 일이나 잔치가 있다고 보는 것이죠. 할매 표정 보세요. 상당히 골똘합니다. 웃으시지야 않지만 기분 나쁜 표정은 아닙니다. 꼭 뭔가 이루어야 할 일이 있어 보이고, 꼭 완수해야겠다는 결심이 보입니다.

발걸음도 신중합니다. 물론 달걀을 들고 계시니까 그렇기도 하겠지만 뚜벅뚜벅 수준 아닙니까? 무늬는 꽃이지만 두꺼운 몸빼를 입고 위에는 두꺼운 재킷, 목도리까지 하셨으니 아주 추운 날입니다. 이런 추위에도 꼭 장을 봐야 했으니 상당히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영감님 생신 차려 드릴 장보기라면 참 좋겠습니다.

제가 어릴 때 자란 추풍령 집은 정말 초가삼간이었는데, 그래도 헛간에 닭둥우리가 공중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닭이 알 낳았다고 꼬꼬댁 소리를 지르면 어머니께서 달걀 꺼내 오라고 시킵니다. 금방 낳은 달걀은 만지면 참 따듯합니다. 아주 기분이 좋아지죠. 비록 얻어먹지는 못했지만 그 느낌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추운 날씨에 할머니께서 달걀을 들고 가시니 달걀이 식거나 얼어서 싸늘하겠지만, 왠지 이 장면 전체적으로 따뜻해 보입니다. 틀림없이 할머니 마음이 따뜻하실 겁니다.

 

출처 : 바람재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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